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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용분야 | 물리학(천문)
  • 책임자 | 박창범 교수, 고등과학원
  • 혁신지원 프로그램 번호 | KSC-2018-CHA-0003, KSC-2019-CHA-0002, KSC-2021-CHA-0012
  • 논문 | 우주 여명기에 최초로 형성된 은하의 구조적 특징
    (Formation and Morphology of the First Galaxies in the Cosmic Morning)
  • 학술지명 / 출판연도 | Astrophysical Journal / 2022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이론천문학자)가 초거대 규모 우주론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인 호라이즌 런5(Horizon Run 5, HR5)에 대한 논문을 

지난 2022년 9월 20일 국제천문학계의 최상위 학술지인 <<천체물리학 저널>>(Astrophysical Journal)에 ‘우주 여명기에 최초로 형성된 은하의 구조적 특징’(Formation and Morphology of the First Galaxies in the Cosmic Morning)이란 제목의 논문을 출판했다. 2021년 12월 25일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 JWST)은 현재까지 인류가 상상한 것 이상의 새롭고 다양한 우주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의 대표적인 천문학자인 박창범 교수가 우주 초기 모습에 대한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호라이즌런5(Horizon Run 5, 이하 HR5)라 명명된 이 시뮬레이션은 KISTI R&D 혁신지원 프로그램 거대연구 지원(KSC-2018-CHA-0003, KSC-2019-CHA-0002, KSC-2021-CHA-0012)을 받아 진행된 대표적인 연구로, 당대 최고의 이론천문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박창범 교수가 주도하였다. 그가 KISTI 슈퍼컴퓨터를 사용하여 어떠한 연구를 진행하고 무엇을 알아낸 것인가를 들어보자.


우주론 표준 모형

현대 우주론은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기원과 현재, 미래를 연구하여 구축한 이론이다. 현대 우주론의 표준 모형은 ‘ΛCDM’이다. Λ(람다)는 우주상수를, CDM은 차가운 암흑물질(cold dark matter)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우주론 표준 모형은 우주를 이루는 물질과 에너지 대부분이, ‘우주상수’와 ‘차가운 암흑물질’이라는 것이다. 우주 공간은 시간이 갈수록 팽창 속도가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고, 현대 우주론은 그걸 설명하기 위해 미지 에너지인 암흑에너지를 도입한 바 있다. 여러 가능한 암흑에너지 중의 하나가 우주상수, 즉 진공에너지라고 보고 있다. 현대 과학자는 진공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고,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암흑물질’은, 암흑물질이라는 아직 정체를 모르는 물질이 있으며, 그 물질의 운동 속도가 빛의 속도에 비해 매우 느리기에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한다. 또한 이 암흑물질은 잡아당기는 힘, 인력이라는 중력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간 박창범 교수는 미국 뉴멕시코주 아파치 포인트 천문대의 SDSS(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 망원경이 관측한 은하의 적색이동 자료를 갖고 연구했다. 적색이동(red shift) 값을 보면 천체가 지구로부터 얼마나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그 값이 클수록 멀리 있는 천체, 즉 우주 초기에 만들어진 천체를 의미한다. 은하들의 적색이동 탐사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은하들이 우주 공간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우주가 어떻게 팽창해 왔느냐를 알 수 있고, 이로부터 우리 우주가 어떻게 중력과 팽창이 균형을 이루며 지금의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주 팽창의 역사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알콕-파친스키 측정법(Alcock-Paczyński Test)이며, 현재 우주론 표준 모형에서는 암흑에너지의 상태방정식 값은 1을 갖는다. 박창범 교수가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을 접한 건 1979년 이 논문을 내놓은 두 사람 중 한 명인 파친스키 교수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당시보단 파친스키 교수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박창범 교수는 그의 강의를 인상 깊게 들었었다고 한다. 이후 학위를 마치고,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1990년 11월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모교인 프린스턴을 찾게 되었다. 이때, 파친스키 교수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에 관한 논문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당시 파친스키 교수는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이 논문에 있는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연구하지 않는다며, 박창범 교수에게 이 측정법을 이용한 연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파친스키 교수가 자기 집에서 저녁 식사도 함께하자며 초대했고, 박창범 교수는 “굉장히 고마웠다. 따님이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극진한 대접을 해줘서 황송할 정도였다.”라고 이야기했다. 박창범 박사는 연구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를 거쳐, 고등과학원으로 오게 되면서,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친스키 교수는 뇌졸중이 와서 건강이 좋지 않았고, 박창범 교수가 고등과학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07년 초 사망했다. 결국 그의 생전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박창범 교수는 이 연구를 일찍 시작하지 못한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

젊은 천문학자들과의 함께 진행한 연구

박창범 교수는 파친스키 교수 사후 2007년부터 우주 공간 팽창 역사를 측정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우주가 진화해도 은하들이 공간에 분포하는 모양은 크게 보았을 때 통계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서 우주 공간의 팽창 역사를 측정하는 방법을 새롭게 고안해 내었다.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서울대학교 등 국내외 유명 대학교에서 갓 학위를 받은 젊은 연구원들은 물론, 한국천문연구원,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소속 연구원들과 함께 여러 단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였다. 첫 단계로 앞서 개발한 은하 분포 진화 이용법과 우주상수의 상태방정식 값을 측정하는 알콕-파친스키 측정법(Alcock–Paczyński Test)을 서로 결합하고, 이를 관측 자료에 적용하였다. 하지만 은하 공간 분포에 담겨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사용하지 못한 한계가 있어, 수년간 여러 단계에 걸쳐 측정법 개량을 거듭한 끝에 비로소 모든 관측 자료에 적용하여 분석하는 연구를 해냈다. 알콕과 파친스키가 낸 초기 아이디어에 그의 아이디어를 결합하고 이를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상술하여 구체화함으로써,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Microwave Radiation) 관측 자료 1)를 사용하지 않고, 은하들의 공간 분포 자료만으로 우주 모형을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의 효용을 검증하기 위해 거대 규모 우주론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고, 그 데이터와 비교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박창범 교수는 슈퍼컴퓨터 이용한 우주론 시뮬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연구의 시작을 알렸다.
박창범 교수는 우주 모형 검증을 위해 우주 표준 모형 보다 약간 일반화된 우주 모형 집단을 채택했다. 그가 채택한 우주는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이 평탄하고 암흑물질은 차가운 성질은 갖는 점은 우주론 표준 모형과 같지만, 암흑에너지를 우주상수로 확정하지 않고 다른 물질일 가능성을 열어뒀다. 암흑에너지의 압력과 밀도의 비를 상태방정식 계수 w라고 하는데, 이 계수는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말해 주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암흑에너지의 압력을 밀도로 나누어준 값이 w다. w가 –1/3보다 크면 우주가 감속 팽창을 하고, 이보다 작으면 가속 팽창을 한다. w가 정확히 –1이면 이때 암흑에너지 정체는 진공에너지이며, 이는 우주론 표준 모형의 기본이다.”하고 그는 설명했다. 변수로써 암흑에너지 상태 값을 선언하고, 일반화된 우주 모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에 기반한 관측 자료 측정값과 비교 검증함으로써, 표준 모형 정당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새로운 우주 모형을 만들어 내는 연구를 박창범 교수가 최초로 시작한 것이다.

KISTI R&D 혁신지원 프로그램

KISTI R&D(Research and Development) 혁신지원 프로그램은 국가 초고성능 컴퓨팅 센터의 초고성능 컴퓨터를 활용하여 계산과학 및 데이터 기반 국가 연구개발 혁신을 촉진할 목적으로 KISTI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3회의 공모를 통해 과제를 선정 후 슈퍼컴퓨터 이용 시간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대규모 혹은 중규모 컴퓨팅 자원을 활용하여 연구개발을 수행하고자 하는 개발 과제(10만 코어 이상의 계산 자원 지원, ‘거대연구’)나 일반적인 과제, 계산과학, 제조 혁신, 인공지능 등의 연구개발을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자(‘창의연구’)에게 지원서 평가 후 1년간 슈퍼컴퓨터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KISTI의 핵심 정책 중의 하나이다. 매년 수많은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데 이 정책이 크게 기여하였으며, 박창범 교수가 최근 수행한 연구는 모두 거대연구 혁신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KISTI 슈퍼컴퓨터 자원의 일정 기간 독점적인 사용을 허가받아 수행하였다.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

우주 표준 모형이 채택하고 있는 암흑에너지 정체는 우주 상수이고, 우주상수는 진공에너지라고 사람들은 보고 있다. 상태방정식 계수가 –1이면 암흑에너지가 진공에너지를 말하지만, 실제 관측값은 조금 다른, -0.9에서 –1 사잇값을 보인다. 이는 곧, 우주 저변에 깔린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진공에너지가 아닌 ‘Quint-essence’라고 불리는 전혀 다른 물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물질에 대해서 제임스 피블스(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와 바흐랏 라트라(Bahrat Ratra, 미국 캔자스 주립 대학교 교수)가 1988년에 처음 제안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진공 에너지는 물리학적 쉽게 예측이 된다. 하지만 물리학에서 예측하는 진공에너지와,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진공에너지의 양은 큰 차이를 보인다. 관측적으로 필요로 하는 양에 비해 이론적 예측값이 약 10의 120승 배나 크다. 입자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진공에너지가 존재할 수는 있으나,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는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될 수 없다.”라며, 박창범 교수는 “진공에너지는 우주에 공간이 있으면 에너지가 있는 거다. 새로운 후보물질은 실제 물질이 존재하며, 압력과 밀도의 비(w)가 –1보다 큰 물체가 우주에 차 있는 거다. 우주 안에 진공, 즉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가진 에너지가 아니라, 우주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물질이 있는 것이고, 이 물질은 우주의 어디에는 많을 수도 있고, 또 어디에는 적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물질은 우리가 익히 들어본 암흑물질과는 다른 것인가? 현재 우주론 표준 모형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약 25%는 암흑물질이 차지한다고 말한다. 암흑물질이 무엇인지, 인류는 모르고 있지만, 현재까지 연구 결과 중력을 가지고 있고, 전자기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을 ‘일반 물질’ 혹은 ‘바리온 물질(baryonic matter)’이라고 하며, 전체 물질-에너지의 5%밖에 안 된다. 우리가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나 성운 등의 빛을 내는 물질은 우주 전체에서 아주 극소량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해 박창범 교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결정적인 차이는 w가 –1/3 지점에서 갈린다. 암흑물질은 압력과 밀도의 비가 –1/3보다 크기에 인력인 중력에 의해 우주를 감속 팽창시킨다. 우주가 팽창하기는 하나 팽창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질이기에 질량을 갖고 있고, 중력이 작용하여 서로 잡아당긴다.”라고 설명하고, “질량의 일반적인 개념이 에너지이며, 에너지를 가진 어떤 물질이 있으면 이 물질이 항상 인력을 내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물질인데, 인력, 즉 잡아당기는 힘이 아니고 밀어내는 힘, 척력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그는 “척력을 낼 수도 있다. 인력을 내느냐, 척력을 내느냐 하는 건 바로 압력과 밀도의 비율인 w에 의해 결정된다.”라며 “비율이 –1/3을 기준으로 크면 인력, 작으면 척력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왜 –1/3에서 밀어내는 힘과 잡아당기는 힘으로 물질의 물리적인 특징이 갈리는지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박창범 교수는 “뉴턴 역학에서는 질량에서만 중력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물질 밀도뿐 아니라 압력도 중력을 만들어 낸다. 뉴턴 중력에서 아인슈타인 중력으로 가면 중력을 주는 항이 질량이 아니라 에너지다. 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압력도 에너지이며, 중력을 주는 물리량이 에너지 즉 물질 밀도 항과 압력 항 2개가 있는 것이다. 이 두 개를 합한 값이 양수가 될 수도 있고, 음수가 될 수도 있다.”라며, 물질 밀도만 있으면 물질 질량이 음수가 되지 않는 한 플러스, 즉 인력으로만 작용하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물질 밀도보다 훨씬 압력이 높으면 두 항의 합이 음수가 되어 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만약 암흑에너지가 진공에너지와 같은 우주상수라면 압력에 의한 중력 항은 더 커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에 있는 물질의 양은 그대로인데 우주가 팽창함으로써 물질 밀도에 의한 중력 항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중력이 약해진다. 그 결과, 압력에 의한 척력은 그대로지만, 인력은 자꾸 약해져 밀어내는 힘이 중요해지게 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3차원으로 세 방향으로 등방하기에 물질 밀도/압력의 비가 –1/3이면 세 방향의 합이 0이 되어 전체 중력값과 팽창 가속도 값이 같아진다. 하지만 이 값이 –1/3보다 크다면, 세 방향의 합이 0보다 작아 전체 중력값이 양수가 되므로 우주가 감속 팽창을 하는 것이고, -1/3보다 작으면 세 방향의 합이 0보다 커 전체 중력값이 음수가 되어 우주가 가속 팽창을 하게 된다. 바로 이 경곗값을 찾고 검증하는 것이 현대 우주론 연구의 목표이다.

관측 자료 비교를 위해 KISTI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다

알콕-파친스키 방법에 관측 자료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관측에서 주어지는 물리량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은하들의 적색이동 수치는 관측 자료에서 주는 가장 중요한 값으로, 이는 빛을 내는 천체가 지구에 있는 관측자로부터 얼마나 빨리 멀어지고 있는가 하는 속도를 알려준다. 이 값을 거리로 환산함으로써 은하들의 3차원 공간상의 분포를 그려낼 수 있기에 어떻게 정확한 거리를 환산할 수 있는지가 연구의 핵심이다. 적색이동 수치를 거리로 환산하려면 우주가 그동안 어떻게 팽창해왔는지를 가정해야 한다. 만약 특정 모형을 가정하고 그거에 맞춰 구간별로 관측된 은하들을 가까운 데에서부터 멀리 있는 데까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한다고 할 때, 적색이동 값에서부터 각 은하가 보이는 방향으로 멀어지는 속도를 변환하여 시선 방향 거리로 환산해서 은하 분포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제대로 시선 방향 거리로 변환했다면 은하들의 공간 분포가 실제 우리 우주 내 천체들의 공간 분포 모습과 일치할 것이다.
박창범 교수는 “우주 거대 구조가 시선 방향으로 찌그러져 있거나, 호떡처럼 납작하게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적색이동을 거리로 잘못 환산하면 은하들의 공간 분포 모습이 찌그러진다. 그러면 내가 우주 모형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 우주는 공간상 균일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은하 분포 자료에서나 가까이 있는 은하 자료에서나 분포의 성질이 통계적으로 똑같아야 하며, 우리는 바로 그런 우주 모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잘못된 우주 모형을 채택하여 은하들의 거리를 잘못 환산한다면, 은하들의 공간상의 분포가 실제보다 왜곡되어 나타나며, 이를 수치화하여 적절한 우주 모형을 찾는 방법이 알콕-파친스키 테스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 연구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점이 많기에, 박창범 교수는 “모든 관측 자료는 지저분하다. 간접적인 선택 효과 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라며 “관측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적인 왜곡 효과를 모두 보정하기 위해 관측 과정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해서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없으면 관측의 왜곡 효과 보정을 하지 못하기에, 그는 KISTI로부터 슈퍼컴퓨터 사용 시간을 지원받아 관측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모형을 만들게 되었다. 대전에 있는 KISTI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수행한 우주 거대 구조 생성 시뮬레이션 연구가 바로 ‘호라이즌 런(Horizon Run, 이하 HR이라고 표현)’이다. HR은 2007년 HR1을 시작으로, HR2, HR3, HR4, HR5, 그리고 2021년 HR+에 이르기까지 단계마다 당대에서는 가장 큰 우주 거대 구조의 진화를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었다. HR1~4는 다체(N-body) 시뮬레이션으로 우주에 N개의 물체가 있다는 가정하에 우주 진화 모형을 연구했으며, HR1에서 HR4로 숫자가 커질수록, 시뮬레이션으로 돌린 입자 수가 늘어났다. 우주를 모사해서 정확하게 그 진화를 알려면 입자 수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입자의 중력만으로 우주에서 은하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기에 더 작은 규모의 별 생성 과정은 살펴볼 수 없었다. 이 점을 보완하고자 후속 연구인 HR5와 HR+에서는 유체역학을 추가했다. 박창범 교수 연구진은 중력과 유체역학을 같이 보는 거대 규모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을 이번에 처음으로 수행하였고, 이 역시 세계적으로 최대의 시물레이션이었다. 그는 “HR4까지는 물질 분포의 요동을 입자로 표현해 중력 계산을 했으며, 가스는 없다.”라면서 “HR5에서는 입자, 즉 중력의 특징에 가스와 별 생성이 들어갔다. 관측 자료와 직접 비교가 가능했다.”라고 본 연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HR5의 실험 결과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그림 - 좌측부터 동일한 지역에서의 a) 암흑물질, b) 별, c) 기체, d) 기체 온도, e) 중금속 함량. 별이 많이 모여있는 위아래 두 지역을 중심으로 기체와 암흑물질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별이 밀집된 지역을 은하가 많이 모여있는 “은하단 (Galaxy Cluster)”영역이라 하며, 거미줄 부분이 “필라멘트 (Filament)”, 그리고 구조가 거의 모이지 않는 사이사이 영역은 “공동 (Void)”라고 부른다.
HR 연구는 매번 세계 최대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이 되었다. 이는 KISTI가 우수한 슈퍼컴퓨터 자원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2018년에 구축한 누리온은 25.7페타플롭스(PFlops)의 계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플롭스는 초당 수행할 수 있는 연산 횟수(부동소수점 연산)이고, 페타플롭스는 초당 1000조 번 연산을 할 수 있다. 박창범 교수는 “이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 위해 KISTI 슈퍼컴퓨터 전체 능력의 4분의 1을 단독으로 사용했다. 이 정도 규모의 슈퍼컴퓨터 자원을 지원받지 못했다면 불가능했다.”라며 KISTI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국내 연구자가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려면 KISTI가 더욱 강력한 슈퍼컴퓨터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를 그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거대 규모의 시뮬레이션을 할 때는 연구자가 항상 현장에 붙어 있어야 한다. HR5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누리온 슈퍼컴퓨터의 코어 17만 개를 사용하였으며, 이는 일반적인 개인용 컴퓨터(평균 10코어 내외)의 만 배가 넘는 규모를 병렬계산 방법을 이용해 진행한다. 슈퍼컴퓨터를 돌리다 보면 간혹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며, 일부 코어가 오류가 생기면 다른 코어 들도 계산 수행을 못 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하기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시스템을 안전하게 재가동해야 한다. 그래서 박창범 교수가 시뮬레이션하는 동안에 함께 연구를 수행한 이재현 박사(한국천문연구원)와 김용휘 박사(KISTI 선임연구원)가 밤새 근무해야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뮬레이션이 끝나 데이터를 얻어냈을 때 그걸 KISTI가 관리하는 10Gbps 네트워크 속도를 가진 국가 과학기술 연구망(KREONET)을 이용하여 빠르게 옮겨와 분석 작업을 해야 했기에 고등과학원 내에는 있는 거대 수치계산 연구센터의 김주한 연구교수가 이 작업을 수행했다. 연구 수행 당사자뿐만 아니라 연구수행기관, 연구지원기관 내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얻어낼 수 없었던 성과이다.

[그림 1.HR5 결과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그림 - 좌측부터 동일한 지역의 a) 암흑물질, b) 별, c) 기체, d) 기체온도, e) 중금속 함량. 별이 많이 모여있는 특정 두 지역을 중심으로 물질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은하(별의 집합)가 많이 모여있는 “은하단 (Galaxy Cluster)”영역이라 하며, 거미줄 부분이 “필라멘트 (Filament)”, 그리고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영역을 “공동 (Void)”이라고 부른다.]

[그림 2. (좌) 회색은 은하 배경 영역을, 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각 은하를 나타낸다. n-1에서 n+1으로 시간에 따라 은하가 진화함을 뜻하며, 점선은 은하가 서로 합쳐지는 단계를 의미한다. 초기 형성된 은하(n-1)의 형태가 여러 역학적 진화 과정을 겪으면서 종국(n+1)에는 다수의 원반, 일부의 구체, 일부의 불규칙 은하가 됨을 본 모식도를 통해 개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 은하 여명기 초기와 후기에서의 은하 질량에 따른 은하 형태 비교. 아래 축 값은 은하질량, 좌측 축값은 은하 형태에 따른 상대적 비율 (원반 Disk, 불규칙 Irregular, 구체 spheroids 의 합은 1). 은하 여명기 극 초기 (z=7)에서 형성된 원반 은하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z=6, z=5로 갈수록 현재에 가까워짐) 그 비율이 더욱 높아지며 질량이 큰 은하일수록 오히려 불규칙 형태와 구체의 형태의 비율이 높은 국부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는 은하가 형성된 환경적인 요인, 즉 밀도장과 속도장의 차이로 인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HR 시뮬레이션의 무궁무진한 활용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인 호라이즌 런은 1페타바이트2) 규모의 우주 천체 데이터를 담고 있다. 박창범 교수는 초기 은하들이 모여 이루어진 원시 은하단의 특성에 대한 연구, 우주 모형에 대한 획기적인 이론인 제5원소론 등 수 차례 천체물리학 저널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모든 연구는 138억년 우주의 나이 동안 만들어진 천체들의 세세한 물리적 특징을 담은 방대한 양의 시뮬레이션 자료를 독자적으로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박창범 교수는 “이는 우주론의 핵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연구 결과이다. 하지만 한 연구자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으며, 한 가지 연구 결과만으로 확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며, 향후 이어질 연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박창범 교수가 표준 모형 검증 연구에 사용한 관측 자료는 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Sloan Digital Sky Survey, SDSS) 자료이다. SDSS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방대한 양의 관측을 수행한 프로젝트로 그간 엄청난 연구 성과를 이룩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급속한 기술 발전에 따라 현재 천문학자들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amesWebb Space Telescope, JWST)과 같은 초정밀 망원경은 물론 거대 마젤란 망원경(Giant Magellan Telescope, GMT)이나 대형 시놉틱 관측 망원경(Large Synoptic Survey Telecope, LSST)과 같은 대형 지상 망원경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관측 자료가 쏟아지는 시기에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관측 및 시뮬레이션 자료를 활용한 추가적인 연구가 잇따라야 하며, 박창범 교수 그룹은 실제로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가 주도하는 남반구와 북반구 2대의 거대 망원경을 이용한 DESI(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 3) 라는 후속 은하 적색이동 탐사에 참여하여, DESI로부터 얻어진 적색이동 관측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발맞춰, 비교, 검증을 위해 HR의 후속 시뮬레이션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구축된 KISTI 누리온 슈퍼컴퓨터 5호기는 물론, 이후 새롭게 도입될 슈퍼컴퓨터 6호기에 맞는 수치 모형을 설계하여, 다시 한번 세계 최대급 우주론 시뮬레이션을 수행함으로써 우리 우주의 근간에 한발짝 더 다가서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박창범 교수가 수행한 HR은 물론, 우주론 시뮬레이션이라는 수치천체물리학 분야는 관측 천문학만큼의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결과가 아직은 부족하다. 세계 여러 수치계산 연구 그룹이 지금도 다양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고, 새로운 연구 결과는 항상 끝없는 검증을 거쳐야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그의 우주론 연구의 운명이 궁금하다. 우주론을 뒤흔드는 위대한 발견의 첫 실마리가 될 것인가?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읽을 거리]

  1. ‘호라이즌 런 5’ 최초 논문, 2021년 2월 8일자 ApJ 발표, ‘The Horizon Run 5 Cosmological Hydrodynamical Simulation: Probing Galaxy Formation from Kilo- to Gigaparcec Scales’
  2. ‘제5원소론’ 논문, 2023년 8월 8일자 ApJ 발표, ‘Tomographic Alcock–Paczyński Test with Redshift-Space Correlation Function: Evidence for Dark Energy Equation of State Parameter w>−1’

1) 우주배경복사 관측 자료란 COBE(1989~19933년), WMAP(2001~2010년)과 같은 미국 NASA가 쏘아 올린 위성들이 빅뱅 38만년 후에 나온 태초의 빛을 관측한 자료를 말한다.

2) 페타바이트(Peta byte)=103 테라바이트(Tera bytes)=106 기가바이트(Giga bytes)=109 메가바이트(Mega bytes)=1012 킬로바이트(kilo bytes)=1015 바이트(bytes)

3) 북반구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4미터급 메이올 망원경, 남반구는 칠레의 4미터급 블랑코 망원경을 이용하여 우주 3분의 1영역에 있는 3000만 개 은하를 미리 선정, DESI가 관측한 적색이동 데이터를 갖고 우주의 3차원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참고로 SDSS는 2.5미터 관측 망원경 1개를 이용하여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