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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온 슈퍼컴퓨터로 수행한 이산화탄소 감축시기의 극한 엘니뇨 증가
포항공과대학교 중앙도서관 이름은 박태준학술정보관이다. 한 시대 거인 이름을 딴 이 건물 바로 맞은 편에 흰색의 작은 3층 건물이 있다. 지곡연구동이다. 3층에 가니 ‘급격한 기후변화 센터’가 있다. 센터장은 국종성 교수(환경공학부). 국 교수는 지난 6월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극한 엘니뇨 관련 논문을 보고했다. 당시 포스텍이 내놓은 보도자료는 그의 논문 내용을 이렇게 정리했다. “POSTECH 환경공학부 국종성 교수, 가얀 파티라나 씨 연구팀은 지구 시스템 모델을 이용한 이산화탄소의 농도 증감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산화탄소 감축 상황에서도 극한 엘니뇨 발생 빈도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 결과를 얻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극한 엘니뇨는 수온 상승과 함께 일 평균 강우량이 5밀리미터(mm)를 초과해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는 경우, 극한 엘니뇨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한다는 결과는 알려져 있었다. 국 교수와 동료 연구자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산화탄소 중립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극한 엘니뇨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어찌 되나? 다시 포스텍 보도자료를 보자. 그가 찾은 답이 요약되어 있다. “이산화탄소를 다시 감소시키더라도 극한 엘니뇨가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열대 수렴대가 남쪽으로 이동하고, 동태평양 지역의 강수가 수온에 민감하게 반응해 극한 엘니뇨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예측은 탄소 중립 등의 탄소 저감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농도로 축적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로 인해 극한 엘니뇨의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 교수를 찾아간 건 지난 9월 19일이다. 알고 보니 그는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터의 오래된 고객이다. 서울대학교 대기과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일 때(1998~2000), 처음으로 KISTI 슈퍼컴퓨터를 이용했다. 국 교수는 “기후모델링을 했다. KISTI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9년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들어갔고, 이곳에서도 KISTI 슈퍼컴퓨터를 이용했다. 해양과기원은 당시 ‘한국형 지구시스템 모델 개발 사업’을 시작했고, 모델을 돌리는 데 슈퍼컴퓨터를 필요로 했다. 지구시스템 모델이 무엇인가? 국 교수 설명을 옮겨 본다. “과거에 기후 변화를 한다고 하면, 대기, 해양, 해빙, 지면 4가지 요소만 고려하면 됐다. 2000년 대 초반쯤 해서부터 이것만 해서는 기후 변화를 잘 예측하지 못한다는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육지 식물과 해양의 식물성 플랑크톤과 같은 지면과 해양의 생지화학 과정이 기후변화에 중요하다는 연구가 제시되었다. 또 탄소 순환이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이 요소들을 모두 결합한 게 지구시스템 모델이고, 그런 바탕에서 한국형 지구시스템 모델 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해양과기원이 당시에는 안산에 있었다. 자체적으로 리눅스 클러스터를 구축해놨으나, KISTI슈퍼컴퓨터를 추가로 연구에 이용했다. KISTI 슈퍼컴퓨터로 지구시스템 모델을 돌리면 굉장히 많은 데이터가 나왔다. 당시 어려움은 이 데이터를 가져오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페타 바이트 분량이었다. 페타(peta)가 무엇인가? 메가(106), 기가(109), 테라(1012)까지는 익숙한데, 잘 모르겠다. 알고 보니, 페타는 테라의 1000배인 1015이다. 대단히 큰 파일 사이즈다, 국 교수는 “슈퍼컴퓨터를 돌리는 시간과 계산한 데이터를 내려받는 시간이 비슷했다”라고 표현했다. 컴퓨터로 계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이나 대전에서 부산으로 자료를 전송받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는 얘기다. 계산에 몇 달 걸렸다면, 내려받는 데 몇 달 걸렸다는 식이다. 국 교수가 기억하는 당시 KISTI 슈퍼컴퓨팅센터 책임자는 조민수 박사다.(조민수 박사는 지금은 KISTI 부원장이다) 국 교수는 “조민수 박사님이 해양과기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애로 사항을 많이 들어줬다“라고 말했다. 국 교수를 만나기 위해 포항에 갈 때 KISTI 권오경 박사가 동행했다. 권 박사는 내게 “요즘은 데이터를 내려 받는 속도가 빨라졌다. 대전 KISTI와 포항공대 간에 전용선이 있다. KREONET(크레오넷)이라고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조직이 KISTI 내부에 있다”라고 말했다. 국 교수는 “여전히 느리다”라면서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나온 데이터를 저장해야 한다. 그 저장 공간이 사용자 입장에서는 항상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슈퍼컴퓨터를 갖고 연구하기 국종성 교수는 2014년 포스텍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KISTI 시설을 본격적으로 이용한 건 2022년 1월부터다. 2023년 말까지 계속해서 KISTI 슈퍼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KISTI는 그의 기후 변화 연구를 지원하고 위해, 컴퓨팅 자원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KISTI로부터 계산 자원을 제공받기 전에는 포항공대 박태준 학술정보관 지하에 있는 서버실 내에 구축한 자체 리눅스 클러스터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KISTI 슈퍼컴퓨팅 자원이 필요했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몇 가지를 언급했다. 연구자가 자체적으로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비용이 올라갔다. 하드디스크 등이 엄청나게 비싸졌다고 한다. 국 교수는 “연구비를 따서 자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걸 어찌어찌 할 수 있으나 그래서는 과제를 온전히 수행하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기후 연구가 달라졌다. 확장되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기후 변화의 비가역성이 새로운 연구 주제로 떠올랐다. 비가역성이 무슨 얘기냐 하면 이산화탄소가 증가했다가 감소하면 현재의 기후로 되돌아올 수 있느냐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국 교수 얘기를 옮겨 본다. “나는 ‘급격한 기후변화 연구 센터’를 하고 있다. 기후 변화가 진행되다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변할 수 있다. 그런 연구를 하려면 전체 지구 시스템 모형으로 해야 한다. 굉장히 오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한다. 몇 백 년을 돌려야 한다. 기존의 기후변화 연구는 향후 100년 어떻게 될지를 봤다. 100년 시뮬레이션 돌리고 끝냈다. 급격한 기후 변화를 연구하려면 200년, 300년, 400년을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한다. 내가 필요로 하는 슈퍼컴퓨팅 자원량이 확 늘어난 거다.” 기존의 기후변화 연구와 급격한 기후변화 연구는 무엇이 다른가? 그는 “그전에는 100년 후의 기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량이 지금보다 2배가 되면 기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연구를 했다. 그런데 탄소 중립이라는 게 나오면서 연구가 달라졌다”라고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탄소 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하는 걸 더 이상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5년 유엔기후변화회의가 채택한 파리 협약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탄소중립 선언이 나오자 탄소중립 이후에 기후는 회복 가능할까 하는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국 교수와 같은 기후과학자는 새로운 과학적인 질문을 풀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세 번의 슈퍼 엘니뇨 국종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대기과학과 94학번이다. 대기과학은 크게 기후과학과 기상과학으로 나눠볼 수 있다. 날씨(weather)를 연구하는 사람이 기상학자이고, 기후, 즉 영어로 climate를 연구하는 사람은 기후학자다. 그가 2023년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논문을 낸 건 ‘극한 엘니뇨’ 관련 연구다. 엘니뇨는 기상이 아니라, 기후 연구다. 엘니뇨는 그와 아주 오랜 인연이 있다. 엘니뇨가 정확히 무엇일까? 자주 듣기는 하나, 엘니뇨가 뭔지 말해 보라고 누군가가 옆구리를 찔러 보면 설명 못한다. 다시 확인해본다. 기상청 사이트는 “적도 열대의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로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이 엘니뇨”라고 말한다. 엘니뇨가 강해지면 그걸 슈퍼 엘니뇨, 혹은 극한 엘니뇨라고 한다. 국종성 교수의 2023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연구를 소개하는 포스텍 보도자료에 따르면 극한 엘니뇨는 수온 상승과 함께 일 평균 강우량이 5밀리미터를 초과해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극한 엘니뇨는 세 번이라고 국 교수는 본다. 82/83엘니뇨, 97/98엘니뇨, 15/16엘니뇨다. 97/98엘니뇨는 1997년~1998년에 발생했다. 국 교수가 지리산 폭우로 김대중 정부 초기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며, 기억하느냐고 물어왔다. 기억에 없다. 자료를 찾아보니 1998년 7월 31일에서 8월 1일 사이에 집중호우로 지리산 근처 계곡과 인근 마을에서 야영객과 주민 103여 명이 물에 휩쓸려 숨지거나 실종됐다. 국 교수에 따르면, 이 사건은 충격적이었고, 정부는 왜 국지성 폭우가 쏟아졌느냐 따져봤고, 그 원인이 엘니뇨라는 것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국 교수는 “한국의 본격적인 기후 예측 연구는 이때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엘니뇨가 중요하고 기후 예측 분야가 떠오르자, 기상청이 기후 관련 연구 과제를 만들었다. 국 교수는 당시 서울대 대학원 석사 과정 학생이었고, 강인식 교수 실험실 소속이었다. 강 교수가 기상청의 기후 예측 모델 만드는 과제를 수행했다. 당시 실험실에 엘니뇨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한 명 있었다. 국 교수의 2년 선배인데, 마침 그는 군대에 가고 없었다. 그러니 실험실에 엘니뇨를 할 사람이 없었고, 강인식 교수가 국종성 학생에게 엘니뇨 예측 모형 개발 연구를 맡겼다. 이 엘니뇨 예측 모델 개발이 그의 석사 논문이 됐다. 그가 개발한 모델을 기상청이 오래 사용했다. 국 교수는 “재작년까지인가 25년 이상 기상청이 내가 만든 모델을 갖고 엘니뇨 예측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게 국 교수와 엘니뇨와의 인연이다. 그의 엘니뇨 연구는 이후 어떻게 진화했을까? 국종성 엘니뇨 연구의 진화 석사 학위 연구가 엘니뇨 예측 모델 만들기였다면, 박사학위 연구 주제는 엘니뇨 역학 및 엘니뇨 예측이다. 그에게 연구 주제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초창기에는 엘니뇨 예측에 포커스를 뒀다. 다음에는 태평양에서 생기는 엘니뇨와 인도양, 대서양이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는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10여 년 전에 이슈가 된 게 있는데, 엘니뇨 다양성이다. 엘니뇨가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거다. 동태평양 엘니뇨 외에 중태평양 엘니뇨가 있다는 연구를 했다. 중태평양 엘니뇨는 날짜 변경선이 지나가는 적도 지역에 생긴다. 내가 2009년 《네이처》에 엘니뇨의 다양성에 관한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이 나온 후에 엘니뇨 커뮤니티가 엘니뇨 다양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10~15년간 연구가 유행이었다. 내가 이 연구를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 논문 다음에 나는 중태평양 엘니뇨가 지구온난화와 관련 있다는 걸 밝혔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면 중태평양 엘니뇨가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이건 예상욱 교수(한양대학교 해양융합과학과)와 함께 한 연구다.” 엘니뇨가 중요한 이유는 기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엘니뇨 형태가 다르면 그 영향도 다르다. 그런데 기후학자들은 엘니뇨 다양성 관련 어떤 연구를 했다는 건가? 국 교수에 따르면 엘니뇨 다양성이 왜 생기는지, 중태평양 엘니뇨는 얼마나 예측할 수 있는지 등 엘니뇨로 할 수 있는 모든 연구를 두 가지 형태의 엘니뇨를 갖고 했다. 엘니뇨 다양성 연구는 성숙 되었나? 국 교수는 “최근 추세는 두 가지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엘니뇨 다양성을 봐야 한다는 거다”라며 태풍을 예로 들었다. 동북아시아에 여름철 접근하는 태풍을 보면 각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엘니뇨도 각각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다. 생기는 위치가 다르고, 또 위치가 같다 하나 대기와 어떻게 접합되느냐에 따라 영향이 다르다. 이후 국 교수 연구 흐름은 극한 엘니뇨이고 기후의 비가역성으로 이어진다. 2023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보고한 논문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극한 엘니뇨는 해수면 온도 기준으로 말하면 2~2.5도가 높은 거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0.5도 이상으로 5개월 지속되는 걸 말한다. 이게 엘니뇨에 대한 정의다. 해수면 온도 측정은 위성에서 한다. 그리고 해수면 온도를 재는 ‘동태평양‘은 적도를 기준으로 남북 위도 5도 이내, 경도로는 서경 150~90도 지역이다. 이 지역을 ’니뇨 3’라고 한다. 극한 엘니뇨 기준은 연구자마다 달라, 2도로 보는 사람이 있다. 국 교수는 2.5도 이상으로 본다. 국 교수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논문을 냈을 때 보도자료는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극한 엘니뇨를 표현하지 않았다. 극한 엘니뇨를 ‘수온 상승과 함께 일 평균 강수량이 5밀리미터를 넘어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수온이 아니라, 강우로 엘니료를 표현하는 건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는 “조금 다르게 정의한 거다. 일반인에게는 어려울 것 같아 설명 안 하려 했다”라며 기후학 얘기를 조금 더 깊이 들려줬다. 엘니뇨와 이상 기후 그는 “엘니뇨가 기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느냐 하면, 대기 순환을 바꿔서 이상 기후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바닷물 온도가 1도 올라가면 대기 순환이 바뀐다. 대기 순환을 어떻게 바꿀까? 엘니뇨가 발생하면 강수가 바뀐다. 비는 공기 중 수증기가 물로 바뀐 거다. 기체(수증기)에서 액체(비)로 바뀌는데, 이때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그 에너지는 잠열(潛熱, Latent Heat)이라고 한다. 잠열로 인해 비가 많이 오면 엄청난 공기 가열이 일어난다. 공기가 데워지면 가벼워지니 상승한다. 대단한 공기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큰 대기 순환이 생긴다. 동태평양 적도 지역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 이게 이상기후를 전 지구적으로 만든다. 국 교수는 “엘니뇨 현상 때 바닷물 온도 변화보다 중요한 건, 그 지역의 강수가 얼마나 바뀌었느냐다”라며 “강수량 변화를 측정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기후에 대한 영향 면에서는 강수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강수량을 갖고 엘니뇨를 정의한 건 그가 아니다. 국 교수도 다른 사람이 내린 일평균 5밀리미터 이상 내리면 그걸 극한 엘니뇨라는 정의를 갖다 썼다. 국 교수는 “지금까지 일 평균 강우량이 5밀리미터 이상 온 건 관측 사상 세 번밖에 없었다. 82/83엘니뇨, 97/98엘니뇨, 15/16엘니뇨다”라고 말했다. 국 교수의 ‘이산화탄소를 줄여도 강해지는 극한 엘니뇨’ 연구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열대 수렴대’라는 용어가 나온다. “열대 수렴대가 남쪽으로 이동하고, 동태평양 지역의 강수가 수온에 민감하게 반응해 극한 엘니뇨가 발생한다”는 문장이다. 열대 수렴대에 대해 보도자료는 보충 설명에서 “지구 대기 순환에 의해 적도 부근에 북동무역풍과 남동무역풍이 수렴하면서 생기는 저기압대”라고 적어놓았다. 내용이 더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봤다. 이런 설명이 있다. “공기 상승이 일어나는 적도 지역이다. 적도 무풍대라고도 한다. 열대수렴대 이동은 계절에 따라 바람 방향이 바뀌는 계절풍의 원인이다.” 극한 엘니뇨가 생기면 열대 수렴대가 남쪽으로 왜 이동하는 것일까? 국 교수는 “열대 수렴대가 남쪽으로 내려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이산화탄소 관련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그의 얘기를 옮겨 본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계속 늘어나는데 ‘탄소 중립’을 실천해서 현재 상태로 되돌린다고 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되돌리면 지구 온도가 낮아질 거다. 온도가 낮아지는 데 북반구와 남반구가 다르다. 북반구는 빨리 온도가 낮아지나, 남반구는 늦게 내려간다. 그 이유는 남반구에 바다가 많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높은 쪽으로 수렴된다. 달리 말하면 이렇다. 따뜻한 데와 차가운 데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상승 운동하는 공기가 있다. 상승한 공기는 따뜻한 곳으로 간다. 즉 북반구 쪽으로 더 많이 간다. 열대 수렴대는 적도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계절마다 다른 데 북위 5~10도 사이에 있다. 그런데 상승한 공기가 북반구쪽으로 많이 가면서 열대 수렴대가 남쪽으로 밀려 내려간다. 그러면 적도에 강수가 많아진다. 이게 엘니뇨를 만든다.” 열대 수렴대가 남반구로 얼마나 밀려 내려갈까? 국 교수는 “아주 많이 내려갈 때는 아예 북반구에 있던 게 아예 남반구까지 내려가고,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제일 많이 내려갈 때는 200년 후쯤이다”라고 말했다. 극한 엘니뇨가 동북아시아, 한반도에 미치는 기후 영향은 무엇일까? 국 교수 연구에 따르면 동아시아에는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남아시아는 오히려 비가 적게 오며 가뭄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그는 “지구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지구 전체의 강수량은 2~3% 늘어난다. 지역적으로는 보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는 더 많이 오고, 적게 오는 지역에는 더 적게 온다”라고 말했다. 기후의 비가역성 2023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논문은 ‘기후의 비가역성’이 핵심 키워드다. 앞에서 일부 얘기 나왔으나 본격적으로 내용을 물었다. 이번 연구에서 국 교수의 첫 번째 관심은 기후변화의 비가역성 연구다. 국 교수에 따르면, 연구를 위해 ‘비가역성에 대한 시나리오’를 먼저 만든다.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가 1%씩 증가한다면 지금으로부터 140년 후에는 현재 농도의 3배가 된다. 그게 정점이다. 그러니 140년 후 시점에서 똑같은 비율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1%씩 줄어든다고 가정했다. 그때부터 280년이 되는 지점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봤다. 국 교수는 “올라가는 140년과, 내려가는 140년을 집중적으로 비교 분석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는 140년에 발생하는 극한 엘니뇨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떨어지는 140년간에 극한 엘니뇨가 2~3배 더 많이 발생할 거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이게 국 교수 연구의 핵심이다. 시뮬레이션을 돌린다는 건 슈퍼컴퓨터를 갖고 적분 계산을 하는 거다. 그는 240년간 모델을 돌려 적분 계산을 하는 데 6개월 이상 소요됐다. 이런 대규모 기후 시뮬레이션 돌리기는 KISTI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KISTI의 계산 자원 지원이 있어서 수행할 수 있었다. 미래 기후 변화의 변동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가상 지구의 기후 모형을 갖고 수 백 년 이상 적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 교수가 향후 500년 기후 변화가 어떻게 되는지 계산하려고 한다. 한참을 더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한다. 그는 “KISTI가 슈퍼컴퓨터를 더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내가 좋은 연구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변화 쪽에 슈퍼컴퓨터를 더 많이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 교수를 만난 지 2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는 지난해 ‘리더 연구자’로 선정되었다. 한국연구재단 과제이고, 6년간 계속된다. 연 8억 원을 지원받는다. 그는 “향후 10년은 급격한 기후 변화가 왜 생기고, 그걸 예측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풀려고 하는 구체적인 과학적인 질문은 무엇일까? 그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지구를 온난화쪽으로 계속 밀고 있다.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한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밀면 균형이 깨진다. 급격한 기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후보가 있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대서양에 큰 해양 순환이 있는데, 그게 멈출 수 있다. 영화 투모로우(2004년)가 북대서양 해류가 멈추고, 그 여파로 기후 변화가 일어나 뉴욕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는 설정을 한 바 있다. 국 교수는 그런 게 예측 가능한지가 중요하고, 그런 걸 연구한다고 했다. 대서양은 그렇고, 태평양에서는 급격한 기후 변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는 “태평양에서는 해류가 모두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바닷물의 밀도 변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대서양과는 다르다”라며 “바닷물 밀도가 태평양과 대서양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라고 말했다. 대서양은 북극해와 연결되어 있으나, 태평양은 베링해협 쪽으로 북극해와 사실상 막혀 있다. 국 교수는 “급격한 기후 변화 연구는 내가 지난 10년간 해 보고 싶었던 연구다”라며 “KISTI 슈퍼컴퓨터로 지구시스템 모델을 돌리면서 장기적인 접근을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림1.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면온도 경도와 Nino3지역 강수와의 관련성 A) 현재기후, B)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는 기간 (2070년), C) 이산화탄소가 감소하는 기간 (2210년), D) 현재 이산화탄소 농도로 유지되는 기간 (2350년). 이산화탄소가 감소하는 기간동안 극한엘니뇨 (빨강)가 급격히 증가한다. ] [그림2. 극한 엘니뇨 증가에 의한 육지 강수의 변화 (shading) 및 850hPa 바람장 (벡터). A) 북반구 겨울, B) 북반구 봄 ]
뉴론 슈퍼컴퓨터로 수행한 실시간 도심 바람길 해석
최정일 연세대학교 대학원 수학계산학부(계산과학공학 전공) 교수와 그의 팀은 2023년 11월 학술지 《건물과 환경》(Building and Environment)의 ‘도심 미기후의 변화와 건설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특집호에 ‘다중 GPU 기반 실시간 도심 바람길 시뮬레이션’(Multi-GPU-based real-time large-eddy simulations for urban microclimate)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판했다.《건물과 환경》은 건축 과학과 그 응용 분야의 국제 학술지이며, 임팩트 팩터(JCR 기준)는 7.4(상위 4.0%)다. 최정일 교수와 양민규 박사과정 연구원은 2023년 한국전산유체공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우수발표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발표 논문 제목은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를 위한 고신뢰성의 바람길 시뮬레이션’이다. 《건물과 환경》 학술지에 출판한 논문 내용을 잠시 보자. KISTI 슈퍼컴퓨터 5호기 NEURON에서 사용 가능한 GPU 기반 실시간 도심 바람길 시뮬레이션을 했으며, 이 시뮬레이션을 위해 CPU 기반 해석자를 넘어 GPU 기반 해석자를 개발했다고 한다. 논문은 “서울시 용산구 일대의 실제 지형 10.49 k㎡을 4미터 해상도로 바람길 해석을 했다. 실제 시간보다 2.4배 빠르게 시뮬레이션이 가능했고, 결론적으로 해당 조건에서 도심 바람길 관련 예보가 가능함을 보였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세한 내용을 묻기 위해 지난 10월 31일 연세대학교 첨단과학기술연구관(첨단관) 6층으로 최정일 교수를 찾았다. 논문 제1저자인 양민규 박사과정 연구원을 같이 만났다. 계산과학공학이란? 연세대학교 첨단관 엘리베이터 6층에 내리니 ‘World Class University: School of Mathematics and Computing’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벽에 붙어 있다. World Class University(WCU)는 2008년에 시작된 정부 주도의 대학연구역량강화 사업이다. 최정일 교수는 “연세대학교 계산과학공학과는 WCU 프로그램에 의해 2009년 설립되었고, 대학원 학과다.”라고 말했다. 2009년 당시 수학과 교수, 공과대학 교수가 참여하였고, 수학과 서진근 교수를 단장으로 계산과학공학과가 만들어졌다. 최정일 교수는 기계공학자이다. KAIST에서 박사학위를 2002년에 받았다(학부 90학번). 최 교수가 학과 소개를 다음과 같이 했다. “계산과학공학(Computational Science and Engineering, CSE)은 수학, 과학, 그리고 공학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급 컴퓨팅 기술과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학문 분야다. 이 분야의 핵심 목표는 복잡한 자연 현상이나 공학적 문제를 모델링, 시뮬레이션, 그리고 분석이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이다. 자연 현상이나 공학문제를 수학적 모델로 표현하고, 이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한다. 2) 수치해석이다. 수학적 모델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알고리즘으로 전환한다. 대부분의 경우 연속적인 수학적 문제를 이산적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3) 과학계산인데, C, C++, Python, Fortran 등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여 수치해석 알고리즘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고, 대규모, 고도 계산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활용하여 해결한다. 계산과학공학은 다양한 분야, 예를 들어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 의학에서 실험적 또는 이론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과학계산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계산과학공학과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하버드 대학교에도 있다. 그러나 많은 곳들이 독립적 학과 형태가 아니고, 응용 수학과 및 공학과가 같이 운영하는 ‘협동과정’ 프로그램 형태다. 그는 “융합형 인재를 만들자는 말을 많이 한다.”라며 “계산과학공학과 교수들이 ‘내 학생은 하이브리드 인재를 만들어보자. 응용수학을 잘 알고, 공학의 필요성도 잘 이해하고, 프로그래밍도 잘하게 만들자’라는 목표를 갖고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가 배출한 박사 제자는 7명이며, 2024년 2월에 4명의 새로운 박사들이 배출될 예정이다. 최 교수 연구 분야 최정일 교수 실험실 이름은 멀티 피직스 계산 연구실(MPMC, Multi-Physics Modeling and Computation Lab)이다. 웹사이트를 구경했기에 최 교수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연구 분야가 네 개 있다고 알고 왔다. 전산유체역학(CFD, Computational Fluid Dynamics), 배터리, Modeling and Computation(물리 기반 수리 모델링), Data-Driven Modeling(데이터 기반 모델링)이라고 적혀 있는 걸 봤다.” 최 교수는 내 말을 듣고 웃으며 정정해줬다. “전산유체역학(도심 풍환경)과 배터리 모델링 두 개가 주요 연구 분야이고, 다른 두 개는 그 연구 분야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연구 방법론이다.” 그의 연구방법론인 ‘물리 기반 수리 모델링’과 ‘데이터 기반 모델링’은 어떻게 다른가? 최 교수에 따르면, 많은 공학 문제나 자연현상은 물리 이론에 근거하여, 그 역학적 관계를 방정식에 의해 수리모델링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법론은 물리 기반 수리모델링이다. 반면에 데이터 기반 모델은 일단 주어진 결과값, 즉 데이터가 있는 거다. 이때 그 데이터 안에 어떤 물리 방정식이 있는지는 모른다. 이 데이터를 통계적 혹은 인공지능 기법을 이용하여 모델링 하는 것이 ‘데이터 기반 모델링’이다. 오늘 듣고자 하는 최 교수의 ‘다중 GPU 기반 실시간 도심 바람길 시뮬레이션’ 연구는 ‘물리 기반 수리 모델링 및 계산’ 방법으로 했다. 그리고 도심 바람길 연구는 그의 두 가지 연구 분야 중 전산유체역학에 속한다. 전산유체역학은 열유체 현상 및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전산, 즉 컴퓨터를 갖고 계산(시뮬레이션)하는 거다. 최정일 교수 실험실 이름에는 ‘멀티피직스’(Multi-physics)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건 또 왜 무얼 뜻하는 걸까? 최 교수는 ‘멀티피직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 물리 현상이 하나의 계(System)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배터리 즉, 전기화학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배터리는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켜 연결된 장치에 전원을 공급한다. 배터리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극반응, 전하량 보존, 이온 수송, 에너지 보존 등을 나타내는 다양한 방정식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모든 시스템은 특정한 하나의 방정식으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대부분 다양한 방정식이 결합한 형태다.” 그가 다른 예를 들었다. 야구공을 던지는 경우다. 공을 던지면, 공과 공기가 맞닿는다. 공이 공기 흐름을 만들 수 있고, 공기 흐름이 공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상호작용이 있다. 유체(공기 흐름)와 고체(공)의 상호작용이다. 유체 흐름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만드는 건 유체역학이고, 고체 움직임은 고체역학으로 설명된다. 유체역학과 고체역학이 혼재한 상태가 많다. 최 교수는 “하나의 방정식으로 구성된 단순한 물리학이 아니라 복잡적인 물리학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게 자연 현상이고 공학적인 문제이다.”라며 “나는 복합적인 물리학을 다루는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모델링 할수 있을까를 공부한다. 이때 모델링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고 간소화해서, 그리고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는 걸 연구한다.”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의 미세 기후 환경 연구의 배경 최 교수가 슬라이드를 보여준다. 슬라이드 제목은 ‘Multi-GPU를 활용한 LES 기반의 도심 바람길 해석자 개발’이다. GPU는 미국기업 엔비디아(NVIDIA)가 대표적인 제품 개발 기업이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용도로 제품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Multi-GPU’라는 표현은 GPU를 여러 개 사용했다는 걸 뜻한다. LES(Large-eddy simulation)는 전산유체역학에서 난류(Turbulence) 현상을 모델링할 때 쓰는 수치 시뮬레이션 기술 중 하나다(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설명). 최 교수는 서울 용산 지역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용산에는 강(한강)도 있고, 복잡한 지형(용산역, 삼각지, 공덕 일대 주택-상가 지구),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넓은 지형(용산정비창)이 있다. 용산에서 김포공항까지 도심 항공 택시(UAM)를 운행하겠다는 서울시 발표도 있었다. 사람이 탈 수 있는 드론을 만들어 운용한다는 미래 그림을 서울시는 2022년에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바 있다. 최 교수는 “현재는 UAM 버티포트 후보지로 김포공항, 용산 등이 정해져 있으나, 추후 UAM이 상용화 될 경우 다양한 곳에 버티포트가 세워져야 한다.”라고 했다. UAM의 착륙장을 버티포트(Vertiport)라고 부른다. 버티포트 위치가 중요하다. 사람이 탄 드론이 안전하게 착륙해야 하고, 날아다녀야 한다. 바람이 세거나 변동이 크면 UAM이 날기 힘들다. 버티포트는 이런 걸 충족하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 교수 연구는 서울시의 이런 구상을 실현하기에 앞서 진행되어야 하는 일종의 선행 연구다. 최 교수는 “버티포트가 세워지기에 앞서 환경평가가 필요하다. 아직 버티포트가 건설되지는 않았으나, 후보지 중 하나인 용산에 대해 이런 걸 해석해 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용산에서 부는 바람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국소적이고, 지엽적인 곳에서 순간적으로 부는 바람을 모사해야 한다. 정교하고 빠르게 계산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UAM이 대처할 수 있으려면 그걸 알아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해석자’(solver)를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다. ‘해석자’는 전산유체역학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이다. 도심 미세 기상 환경 연구 도심 바람 환경 연구를 하는데, 대상 영역이 커지면 질수록 컴퓨터가 해석해야 하는 면적이 넓어진다. 따라서 미지수 개수가 많아지기에 해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미지수 개수는 같은 영역을 얼마나 정밀하게 볼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도 늘어날 수 있다. 한 지역을 격자로 나눠보는데, 격자 하나 크기를 얼마로 할 것인가에 따라 계산량이 달라진다. 격자의 한 변 크기를 10m로 볼 수도 있고, 100m로 볼 수도 있다. 격자 크기가 작을수록 작은 지역의 바람 환경을 정밀하게 알 수 있다. 해상도, 혹은 분해능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하나의 격자 크기를 얼마로 해야 할까? 가령 높이가 100m인 건물 주변의 바람 환경을 보려면 격자 한 개 크기가 100m보다 크면 안 된다. 그래야 특정 건물의 바람 환경을 파악할 수 있다. 아파트 동과 동의 거리가 100m가 안 되는 게 많다. 그러면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을 보려면 격자 크기가 100m가 안 되어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만약 사람의 크기 정도를 생각하여 해석하고 싶을 때는 2m 혹은 4m 정도의 분해능이 나와야 한다. 최 교수와 양 연구원이 살펴 본 목표 공간 크기는 가로 2㎞&times세로 2㎞ &times높이 256m다(시뮬레이션을 돌린 전체 크기는 10.24k㎡이고, 그중 4k㎡에 대해 ‘분석’ 작업을 했다). 이 목표 공간을 서로 다른 격자 크기로 각각 살펴봤다. 해석 격자의 크기는 8m, 4m, 2m, 1.33m의 총 네 가지였다. 예컨대 격자 한 변이 1.33m 경우를 보면 목표공간에 들어가는 격자 수가 약 10억 개(안정된 계산을 위한 추가영역의 격자 포함)다. 한 지점에서 바람의 속도를 알려면 세 가지 방향(x, y, z축 방향)을 봐야 한다. 여기에 압력, 온도 변수를 더 본다. 한 격자에서 변수 5개를 동시에 보는 거다. 전체 미지수 수는 10억 &times 5 = 50억 개가 된다. 최 교수는 “대략 50억 개에 가까운 미지수를 컴퓨터가 해석해야 한다. 이런 크기는 컴퓨터로서는 도전(challenge)이다.”라고 말했다. 계산은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변화하는 미지수를 계산해야 한다. 시간 간격을 10분 정도로 길게 늘릴 수도 있으나 이렇게 되면 해석자의 정확성도 떨어지며 순간적으로 바뀌는 바람을 알기 힘들다. 최 교수 팀은 약 1초 간격으로 바람 특성을 살폈다. 계산을 위해 컴퓨터는 어느 정도의 메모리가 필요할까? 격자가 10억 개이고 이 지점의 주변 정보를 1초 간격으로 얻어내야 한다. 최 교수 말을 옮겨본다. “대략적으로 50억 개까지의 미지수가 메모리로 얼마 되는지 환산해 보자. 한 개의 미지수를 배정도(Double precision) 크기라고 가정하면 8바이트니, 50억 개의 미지수는 40 기가바이트다(기가바이트는 10억 바이트. 그러니 40 기가바이트는 400억 바이트다). 이 문제를 풀 때 미지수 개수만 필요한 게 아니고, 주변 변수들이 많다. 그것들이 50개는 된다고 본다. 이제 필요한 컴퓨터 메모리 용량이 500 기가바이트다. 그게 다가 아니다. 500 기가바이트의 메모리 용량이 필요한 계산을 몇 초마다 계속해서 해야 한다. 계산하고 그 결과를 저장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일반 컴퓨터는 현재 없다. 현존하는 가정용 컴퓨터는 이걸 계산하지 못한다.” GPU기반 해석자 개발 이런 계산을 GPU가 장착된 컴퓨터를 갖고 한다. GPU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의미한다. GPU 카드 하나가 최대 80기가 바이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NVIDIA A100 기준). 800기가바이트 메모리가 필요한 계산을 하려면 최소 GPU 10개이고, 400기가바이트라면 최소 GPU 5개가 필요하다. 나는 “GPU 5개라면 별 거 아니지 않느냐?”라고 질문했다. 최 교수는 “쓸 수 있는 메모리 용량과 계산 속도는 다르다. GPU가 일을 할 때는 자기 용량을 최대로 하는 것이 좋은 계산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엔비디아 GPU인 A100 5개가 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계산량 크기라는 것이지, 과학 계산을 A100 5개로 효율적으로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A100 GPU는 비싸다. 8개 모듈값만 1.5억원 이상이다. 엔비디아는 2023년에 새로운 카드인 H100을 선보였다. 인공지능 붐에 의해 GPU 품귀 현상이 벌어져 이 제품도 개당 5000만원을 호가한다. 최정일 교수 연구실이 갖고 있는 GPU는 A100 모델 4개다. 최 교수는 “2~3억 원 하는 장비를 사려면 전체 연구비 규모가 10억원은 이상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최정일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팅센터 계산 자원을 이용했다. KISTI가 보유하고 있는 GPU 8개로 계산을 했다. GPU 8개를 10시간 돌려서 서울 용산 지역 10.49㎢에, 하루 24시간 부는 바람 환경을 모사했다. 2023년 5월에 KISTI 슈퍼컴퓨팅센터 자원을 돌렸다. KISTI는 2023년 현재 GPU를 260개 정도 보유하고 있고, 절대다수의 계산자원은 CPU 기반의 컴퓨터다. 그리고 2024년부터 구축하는 새로운 슈퍼컴퓨터에는 GPU에 기반한 컴퓨터를 압도적으로 많게 설치할 예정이다. [그림 1. (좌-상) 해석자를 검증하기 위한 이상화된 건물 구조의 도메인, (좌-하) 해석된 바람장의 평균 유동 및 온도 연직 프로파일: 풍동 실험 결과와 해석자의 프로파일이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우) 해당 도메인을 이용하여 실제 크기를 가정하여 NVIDIA A100 GPU 개수와 해석 영역, 해석 해상도에 따른 해석자의 시뮬레이션 속도 비교 : 각 선 좌측의 영역은 실제 시간보다 빠르고, 우측 영역은 실제 시간보다 느리게 계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 중요한 건 실시간 해석(정보) 최 교수가 “사람을 태운 UAM이 뜨려면 제일 중요한 건 바람 환경에 대한 실시간 해석이다.”라고 말했다. 바람 환경 정보를 실시간보다 빨리 계산해서 UAM에 줘야 한다. 그래야 UAM 운전자의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된다. 앞에서 NVIDIA A100 8개를 8시간 돌리면 15분, 즉 900초를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산술적으로 보면 8대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이 GPU를 쓰면, 예컨대 100개를 쓰면 빠른 계산이 가능하다. 앞에서 용산의 4㎢ 지역을 격자 크기 4개(8m, 4m, 2m, 1.33m)로 봤다고 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 중에서 ‘실시간 해석‘에 접근한 격자 크기는 4m다. 4m 분해능으로 보면 격자 수는 4000만 개이고, 한 격자에서의 바람 세 방향과 압력, 온도 변수 총 5개를 알아내려면 전체 미지수는 4000만 × 5 해서 2억 개가 된다. 그러면 하루 동안의 바람 환경을 10시간 만에 예측할 수 있다. 실제 시간보다 2.4배 빠르게 계산해냈다. 최 교수는 “기상 데이터를 외부에서 받아서 우리 해석자를 통해서 바람 환경에 대한 결과를 얻어내고, 그걸 드론이나 UAM에게 주고 싶은 거다.”라며 “적절한 분해능을 갖고 해석했을 때 실시간보다 더 빠른 계산은 거의 없었다. 우리 연구는 굉장히 경쟁력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정도 되면 실시간 예측이 가능할 걸로 보인다. 충분하지 않다. 10배 정도 빨리 예측해야 그게 될똥말똥하다. 정보를 드론에 전달하는데 소모되는 시간이나 다른 요소를 계산하는 시간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이번에는 바람 외에 온도 변수만 넣었으나, 도심 바람 환경을 이루는 요소는 더 많다. 대기 안정성, 복사열과 열지도, 관측자료 연동, 오염물질 확산 등 추가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슈퍼컴퓨팅 기술, 특히 GPU 병렬 계산을 통해 계산 속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을 더 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누군가 이런 식으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계산해서 제공하게 될 것이다. UAM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령, 24시간동안의 상황을 1시간 만에 풀면 24시간 뒤의 상황을 23시간 전에 알 수 있는 거다. 해석자 만들기 도심의 미세 바람 환경을 실시간보다 더 빨리 계산해낸 게 최정일 교수팀의 이번 성과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그런 연구가 없었나?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NCAR)가 개발한 코드인 FastEddy 모델이 있다. 2020년 GPU 기반으로 한 연구다. 캐나다 콩코르디아 대학교 (Concordia University) 그룹이 2022년에 개발한 CityFFD 모델도 있다. 최 교수는 “NCAR의 모델은 방정식을 해석하는 방법 등이 우리와 다르다. 이때문에 각 모델의 장단이있어고 누가 우위에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라며 “우리는 독자적으로 해석자를 만들었고, 이 해석자 장점은 실시간 시뮬레이션 속도가 매우 빨랐다라는 것에 있다. 우리의 해석 속도와 수치 해석 방법을 보면 충분히 경쟁력있는 플랫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계산자원, 해상도와 해석 영역까지 해서 정량적으로 분석한 것은 우리가 처음일 것이고, 이런 분석도 가능하다는 걸 명시적으로 보여준 최초 사례라고 보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가 개발한 ‘해석자’ 이름은 무엇인가? NCAR는 FastEddy이고, 콩코르디아 대학교 그룹 모델 이름은 CityFFD인데. 최 교수는 “아직 해석자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서 이름은 차차 고민하고 있으나 대략적으로 정해둔 이름은 있다.”라며 대신 이번 바람길 ‘해석자’를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줬다. “3단계로 진행되었다. ①수리 모델링, ②수치해석 알고리즘 개발, ③알고리즘 병렬화 순으로 진행된다. 1단계를 보면 여기에 바람길을 해석하기 위한 세 개의 방정식(연속 방정식, 운동량 방정식, 에너지 방정식)이 있다. 이것이 바로 수리 모델링을 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수리모델링한 걸, 즉 수학식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학식을 다른 형태로 표현해야 하며, 이걸 차분화(Discretization)시킨다고 한다.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게 수식을 선형대수 형태로 바꾼다. 이것이 바로 수치해석 알고리듬 개발이다. 여기가 중요하다. 성능을 위해서 좋은 알고리듬이 필요하다. 우리 연구팀은 이 부분에서 오랫동안 알고리듬을 진보시켜 왔다. 그래서 해석자가 상대적으로 빠른 성능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계산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병렬 계산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바로 마지막 과정인 알고리듬 병렬화이다. 그러면 해석자가 완성된다. ‘해석자’라고 하면 1, 2, 3단계 작업을 다 포함한다. 연구를 유형의 물건으로 본다면 해석자는 프로그램이 되겠다. 이 해석자를 컴퓨터에서 구동하면 된다.” [그림 2. (좌-상)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지형과 해석 영역. 총 해석 영역은 10.49km2이다. (좌-하) 해석 영역에서 해석한 3D 결과. (우) 용산 지역의 (a) XZ 및 (b) Z=10m, (c) Z=40m에서의 XY 연직 속도장. 영역 1에서 대로변 사이에서 유속이 더 강해지는 Channeling effect가 관찰되며, 영역 2에서는 건물 영역의 뒤에 강한 후류가 발생하는 Sheltering effect, 영역 3에서는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낮은 지역과 다르게 강한 바람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추후 지표를 활용하여 UAM의 버티포트 설계 등에 이용되어야 할 것이다. ] [그림 3. (좌) 해석자에서 주된 계산 시간을 차지하는 삼중대각행렬(Tri-diagonal matrix) 및 다중 GPU 계산에 특화된 알고리즘인 PaScaL_TDMA의 알고리즘 전개도.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전개 시 많은 GPU를 사용하더라도 계산 성능이 저하되지 않고 확장성 있는 계산을 보장한다. (우) 바람길 해석자의 전체 알고리즘 전개 도표. 계산 성능에 주된 영향을 차지하는 코어 모듈에서는 PaScaL_TDMA 알고리즘을 포함하여 CuFFT 등 GPU를 이용한 가속화 라이브러리가 사용되었다. ] 최정일 교수의 이전 연구 이번 연구에서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나? 최 교수는 “2019년에 했던 일이다. CPU 기반으로 병렬계산을 하는 방법론인 MPI(Message Passing Interface, 메시지 전달 인터페이스)를 이용하여 해석자를 만드는 게 힘들었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이 연구는 2012년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알고리듬을 만들어왔다. 2016년에 한 차례 도약이 있었고(Journal of Computational Physics, 논문 제목 A decoupled monolithic projection method for natural convection problems), 2019년이 되었을 때 알고리즘이 어느 정도 성장했다. 그해 슈퍼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한 병렬 계산법도 개발했다. CPU 25만 코어를 갖고 병렬계산을 하는데 MPI를 이용하여 계산하는 방법론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연구가 2021년 ‘Computer Physics Communications’ 저널에 PaScaL_TDMA라는 수치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공개하면서 출판하였다. 연구방법론에서는 이게 가장 큰 도약이다. 그리고 2023년에 PaScaL_TDMA 2.0을 만들었다. 이건 기존 알고리듬의 GPU 버전이다. GPU가 CPU 기반 컴퓨터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연구방법론에서 세 번의 도약이 있었다.” 바람 환경 연구에 대해 되짚어본다면, 앞선 연구로는 2019년 레일리-베나르 대류(Rayleigh–Bénard convection) 문제를 해석한 게 있다. 레일리-베나르 대류는 아래에서 가열된 유체의 평면 수평층에서 발생하는 자연 대류의 한 유형이다. 최 교수는 “물을 끓일 때 바닥면에서 가열된 물은 부피가 팽창하여 밀도가 낮아져 부력으로 상승하고, 반대로 상층부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밀도가 높아진 물은 하강한다. 그럼 유체의 순환 운동이 발생하면서, 유체 내 정렬화된 패턴이나 셀 등이 형성된다. 이러한 현상은 온도차이가 일정 기준을 넘었을 때 발생하며, 온도차가 클수록 대류현상이 강한 난류로 발전한다. 레일리-배나드 대류는 유체역학, 기상학 및 공학에서 중요한 현상으로 연구되며, 온도차에 의해 유도되는 자연대류의 기본적인 예시로서 유체동역학적 패턴을 이해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주기에, 이러한 현상을 시뮬레이션했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MPI 기반의 CPU를 이용하여 계산한 것이고, 여기에서 해석자를 확대시켜, 건물도 인식하게 하고, CPU 기반 계산에서 GPU 기반 계산으로 바꿔서 탄생한 게 2023년 연구다. 양민규 박사과정 연구원이 2023년 논문의 제1저자다. 그는 이번 연구에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질문을 받고 “내가 하드웨어 전공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GPU와 친해지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라며 “목표로 하는 성능이 100이라고 하면 처음에 코딩했을 때는 10밖에 안 나왔다. 100까지 가기 위해 교수님과 많은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최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양민규 연구원과 더불어M내 연구실에 있었던 김기하 박사(삼성종합기술원), 오근우 박사(삼성디스플레이), Xiaomin Pan 교수(상하이대)와 KISTI 강지훈, 권오경 박사들을 포함한 연구원들의 노력이 집약된 산출물이자 실시간 도심풍환경 연구의 마중물이다.”라고 말했다. 최정일 교수의 연구 이력 최 교수는 KAIST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복잡한 난류가 생기면 벽면에서 마찰이 많이 발생한다. 항력이 많이 생기니, 이를 제어하는 방법론을 개발하려고 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항력감소를 위한 난류제어기법 개발’이다. 2002년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가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Chapel Hill)과 NCSU에서 2010년까지 연구했다. 2010년 연세대학교 교수로 오기 직전에는 메릴랜드 주에 있는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의 건물화재연구소(Building & Fire Research Lab)에서 일했다.
누리온 슈퍼컴퓨터로 수행한 초기 우주 천체의 기원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이론천문학자)가 초거대 규모 우주론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인 호라이즌 런5(Horizon Run 5, HR5)에 대한 논문을  지난 2022년 9월 20일 국제천문학계의 최상위 학술지인 <<천체물리학 저널>>(Astrophysical Journal)에 ‘우주 여명기에 최초로 형성된 은하의 구조적 특징’(Formation and Morphology of the First Galaxies in the Cosmic Morning)이란 제목의 논문을 출판했다. 2021년 12월 25일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 JWST)은 현재까지 인류가 상상한 것 이상의 새롭고 다양한 우주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의 대표적인 천문학자인 박창범 교수가 우주 초기 모습에 대한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호라이즌런5(Horizon Run 5, 이하 HR5)라 명명된 이 시뮬레이션은 KISTI R&D 혁신지원 프로그램 거대연구 지원(KSC-2018-CHA-0003, KSC-2019-CHA-0002, KSC-2021-CHA-0012)을 받아 진행된 대표적인 연구로, 당대 최고의 이론천문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박창범 교수가 주도하였다. 그가 KISTI 슈퍼컴퓨터를 사용하여 어떠한 연구를 진행하고 무엇을 알아낸 것인가를 들어보자. 우주론 표준 모형 현대 우주론은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기원과 현재, 미래를 연구하여 구축한 이론이다. 현대 우주론의 표준 모형은 ‘ΛCDM’이다. Λ(람다)는 우주상수를, CDM은 차가운 암흑물질(cold dark matter)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우주론 표준 모형은 우주를 이루는 물질과 에너지 대부분이, ‘우주상수’와 ‘차가운 암흑물질’이라는 것이다. 우주 공간은 시간이 갈수록 팽창 속도가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고, 현대 우주론은 그걸 설명하기 위해 미지 에너지인 암흑에너지를 도입한 바 있다. 여러 가능한 암흑에너지 중의 하나가 우주상수, 즉 진공에너지라고 보고 있다. 현대 과학자는 진공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고,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암흑물질’은, 암흑물질이라는 아직 정체를 모르는 물질이 있으며, 그 물질의 운동 속도가 빛의 속도에 비해 매우 느리기에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한다. 또한 이 암흑물질은 잡아당기는 힘, 인력이라는 중력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간 박창범 교수는 미국 뉴멕시코주 아파치 포인트 천문대의 SDSS(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 망원경이 관측한 은하의 적색이동 자료를 갖고 연구했다. 적색이동(red shift) 값을 보면 천체가 지구로부터 얼마나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그 값이 클수록 멀리 있는 천체, 즉 우주 초기에 만들어진 천체를 의미한다. 은하들의 적색이동 탐사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은하들이 우주 공간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우주가 어떻게 팽창해 왔느냐를 알 수 있고, 이로부터 우리 우주가 어떻게 중력과 팽창이 균형을 이루며 지금의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주 팽창의 역사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알콕-파친스키 측정법(Alcock-Paczyński Test)이며, 현재 우주론 표준 모형에서는 암흑에너지의 상태방정식 값은 1을 갖는다. 박창범 교수가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을 접한 건 1979년 이 논문을 내놓은 두 사람 중 한 명인 파친스키 교수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당시보단 파친스키 교수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박창범 교수는 그의 강의를 인상 깊게 들었었다고 한다. 이후 학위를 마치고,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1990년 11월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모교인 프린스턴을 찾게 되었다. 이때, 파친스키 교수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에 관한 논문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당시 파친스키 교수는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이 논문에 있는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연구하지 않는다며, 박창범 교수에게 이 측정법을 이용한 연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파친스키 교수가 자기 집에서 저녁 식사도 함께하자며 초대했고, 박창범 교수는 “굉장히 고마웠다. 따님이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극진한 대접을 해줘서 황송할 정도였다.”라고 이야기했다. 박창범 박사는 연구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를 거쳐, 고등과학원으로 오게 되면서,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친스키 교수는 뇌졸중이 와서 건강이 좋지 않았고, 박창범 교수가 고등과학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07년 초 사망했다. 결국 그의 생전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박창범 교수는 이 연구를 일찍 시작하지 못한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 젊은 천문학자들과의 함께 진행한 연구 박창범 교수는 파친스키 교수 사후 2007년부터 우주 공간 팽창 역사를 측정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우주가 진화해도 은하들이 공간에 분포하는 모양은 크게 보았을 때 통계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서 우주 공간의 팽창 역사를 측정하는 방법을 새롭게 고안해 내었다.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서울대학교 등 국내외 유명 대학교에서 갓 학위를 받은 젊은 연구원들은 물론, 한국천문연구원,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소속 연구원들과 함께 여러 단계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였다. 첫 단계로 앞서 개발한 은하 분포 진화 이용법과 우주상수의 상태방정식 값을 측정하는 알콕-파친스키 측정법(Alcock–Paczyński Test)을 서로 결합하고, 이를 관측 자료에 적용하였다. 하지만 은하 공간 분포에 담겨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사용하지 못한 한계가 있어, 수년간 여러 단계에 걸쳐 측정법 개량을 거듭한 끝에 비로소 모든 관측 자료에 적용하여 분석하는 연구를 해냈다. 알콕과 파친스키가 낸 초기 아이디어에 그의 아이디어를 결합하고 이를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상술하여 구체화함으로써,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Microwave Radiation) 관측 자료 1)를 사용하지 않고, 은하들의 공간 분포 자료만으로 우주 모형을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의 효용을 검증하기 위해 거대 규모 우주론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고, 그 데이터와 비교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박창범 교수는 슈퍼컴퓨터 이용한 우주론 시뮬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연구의 시작을 알렸다. 박창범 교수는 우주 모형 검증을 위해 우주 표준 모형 보다 약간 일반화된 우주 모형 집단을 채택했다. 그가 채택한 우주는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이 평탄하고 암흑물질은 차가운 성질은 갖는 점은 우주론 표준 모형과 같지만, 암흑에너지를 우주상수로 확정하지 않고 다른 물질일 가능성을 열어뒀다. 암흑에너지의 압력과 밀도의 비를 상태방정식 계수 w라고 하는데, 이 계수는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말해 주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암흑에너지의 압력을 밀도로 나누어준 값이 w다. w가 –1/3보다 크면 우주가 감속 팽창을 하고, 이보다 작으면 가속 팽창을 한다. w가 정확히 –1이면 이때 암흑에너지 정체는 진공에너지이며, 이는 우주론 표준 모형의 기본이다.”하고 그는 설명했다. 변수로써 암흑에너지 상태 값을 선언하고, 일반화된 우주 모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알콕-파친스키 측정법에 기반한 관측 자료 측정값과 비교 검증함으로써, 표준 모형 정당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새로운 우주 모형을 만들어 내는 연구를 박창범 교수가 최초로 시작한 것이다. KISTI R&D 혁신지원 프로그램 KISTI R&D(Research and Development) 혁신지원 프로그램은 국가 초고성능 컴퓨팅 센터의 초고성능 컴퓨터를 활용하여 계산과학 및 데이터 기반 국가 연구개발 혁신을 촉진할 목적으로 KISTI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3회의 공모를 통해 과제를 선정 후 슈퍼컴퓨터 이용 시간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대규모 혹은 중규모 컴퓨팅 자원을 활용하여 연구개발을 수행하고자 하는 개발 과제(10만 코어 이상의 계산 자원 지원, ‘거대연구’)나 일반적인 과제, 계산과학, 제조 혁신, 인공지능 등의 연구개발을 수행하고자 하는 연구자(‘창의연구’)에게 지원서 평가 후 1년간 슈퍼컴퓨터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KISTI의 핵심 정책 중의 하나이다. 매년 수많은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데 이 정책이 크게 기여하였으며, 박창범 교수가 최근 수행한 연구는 모두 거대연구 혁신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KISTI 슈퍼컴퓨터 자원의 일정 기간 독점적인 사용을 허가받아 수행하였다.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 우주 표준 모형이 채택하고 있는 암흑에너지 정체는 우주 상수이고, 우주상수는 진공에너지라고 사람들은 보고 있다. 상태방정식 계수가 –1이면 암흑에너지가 진공에너지를 말하지만, 실제 관측값은 조금 다른, -0.9에서 –1 사잇값을 보인다. 이는 곧, 우주 저변에 깔린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진공에너지가 아닌 ‘Quint-essence’라고 불리는 전혀 다른 물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물질에 대해서 제임스 피블스(201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와 바흐랏 라트라(Bahrat Ratra, 미국 캔자스 주립 대학교 교수)가 1988년에 처음 제안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진공 에너지는 물리학적 쉽게 예측이 된다. 하지만 물리학에서 예측하는 진공에너지와,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진공에너지의 양은 큰 차이를 보인다. 관측적으로 필요로 하는 양에 비해 이론적 예측값이 약 10의 120승 배나 크다. 입자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진공에너지가 존재할 수는 있으나,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는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될 수 없다.”라며, 박창범 교수는 “진공에너지는 우주에 공간이 있으면 에너지가 있는 거다. 새로운 후보물질은 실제 물질이 존재하며, 압력과 밀도의 비(w)가 –1보다 큰 물체가 우주에 차 있는 거다. 우주 안에 진공, 즉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가진 에너지가 아니라, 우주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물질이 있는 것이고, 이 물질은 우주의 어디에는 많을 수도 있고, 또 어디에는 적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이 물질은 우리가 익히 들어본 암흑물질과는 다른 것인가? 현재 우주론 표준 모형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약 25%는 암흑물질이 차지한다고 말한다. 암흑물질이 무엇인지, 인류는 모르고 있지만, 현재까지 연구 결과 중력을 가지고 있고, 전자기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을 ‘일반 물질’ 혹은 ‘바리온 물질(baryonic matter)’이라고 하며, 전체 물질-에너지의 5%밖에 안 된다. 우리가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나 성운 등의 빛을 내는 물질은 우주 전체에서 아주 극소량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해 박창범 교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결정적인 차이는 w가 –1/3 지점에서 갈린다. 암흑물질은 압력과 밀도의 비가 –1/3보다 크기에 인력인 중력에 의해 우주를 감속 팽창시킨다. 우주가 팽창하기는 하나 팽창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질이기에 질량을 갖고 있고, 중력이 작용하여 서로 잡아당긴다.”라고 설명하고, “질량의 일반적인 개념이 에너지이며, 에너지를 가진 어떤 물질이 있으면 이 물질이 항상 인력을 내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물질인데, 인력, 즉 잡아당기는 힘이 아니고 밀어내는 힘, 척력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그는 “척력을 낼 수도 있다. 인력을 내느냐, 척력을 내느냐 하는 건 바로 압력과 밀도의 비율인 w에 의해 결정된다.”라며 “비율이 –1/3을 기준으로 크면 인력, 작으면 척력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왜 –1/3에서 밀어내는 힘과 잡아당기는 힘으로 물질의 물리적인 특징이 갈리는지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박창범 교수는 “뉴턴 역학에서는 질량에서만 중력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물질 밀도뿐 아니라 압력도 중력을 만들어 낸다. 뉴턴 중력에서 아인슈타인 중력으로 가면 중력을 주는 항이 질량이 아니라 에너지다. 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압력도 에너지이며, 중력을 주는 물리량이 에너지 즉 물질 밀도 항과 압력 항 2개가 있는 것이다. 이 두 개를 합한 값이 양수가 될 수도 있고, 음수가 될 수도 있다.”라며, 물질 밀도만 있으면 물질 질량이 음수가 되지 않는 한 플러스, 즉 인력으로만 작용하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물질 밀도보다 훨씬 압력이 높으면 두 항의 합이 음수가 되어 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만약 암흑에너지가 진공에너지와 같은 우주상수라면 압력에 의한 중력 항은 더 커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에 있는 물질의 양은 그대로인데 우주가 팽창함으로써 물질 밀도에 의한 중력 항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중력이 약해진다. 그 결과, 압력에 의한 척력은 그대로지만, 인력은 자꾸 약해져 밀어내는 힘이 중요해지게 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3차원으로 세 방향으로 등방하기에 물질 밀도/압력의 비가 –1/3이면 세 방향의 합이 0이 되어 전체 중력값과 팽창 가속도 값이 같아진다. 하지만 이 값이 –1/3보다 크다면, 세 방향의 합이 0보다 작아 전체 중력값이 양수가 되므로 우주가 감속 팽창을 하는 것이고, -1/3보다 작으면 세 방향의 합이 0보다 커 전체 중력값이 음수가 되어 우주가 가속 팽창을 하게 된다. 바로 이 경곗값을 찾고 검증하는 것이 현대 우주론 연구의 목표이다. 관측 자료 비교를 위해 KISTI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다 알콕-파친스키 방법에 관측 자료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관측에서 주어지는 물리량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은하들의 적색이동 수치는 관측 자료에서 주는 가장 중요한 값으로, 이는 빛을 내는 천체가 지구에 있는 관측자로부터 얼마나 빨리 멀어지고 있는가 하는 속도를 알려준다. 이 값을 거리로 환산함으로써 은하들의 3차원 공간상의 분포를 그려낼 수 있기에 어떻게 정확한 거리를 환산할 수 있는지가 연구의 핵심이다. 적색이동 수치를 거리로 환산하려면 우주가 그동안 어떻게 팽창해왔는지를 가정해야 한다. 만약 특정 모형을 가정하고 그거에 맞춰 구간별로 관측된 은하들을 가까운 데에서부터 멀리 있는 데까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한다고 할 때, 적색이동 값에서부터 각 은하가 보이는 방향으로 멀어지는 속도를 변환하여 시선 방향 거리로 환산해서 은하 분포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제대로 시선 방향 거리로 변환했다면 은하들의 공간 분포가 실제 우리 우주 내 천체들의 공간 분포 모습과 일치할 것이다. 박창범 교수는 “우주 거대 구조가 시선 방향으로 찌그러져 있거나, 호떡처럼 납작하게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적색이동을 거리로 잘못 환산하면 은하들의 공간 분포 모습이 찌그러진다. 그러면 내가 우주 모형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 우주는 공간상 균일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은하 분포 자료에서나 가까이 있는 은하 자료에서나 분포의 성질이 통계적으로 똑같아야 하며, 우리는 바로 그런 우주 모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잘못된 우주 모형을 채택하여 은하들의 거리를 잘못 환산한다면, 은하들의 공간상의 분포가 실제보다 왜곡되어 나타나며, 이를 수치화하여 적절한 우주 모형을 찾는 방법이 알콕-파친스키 테스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 연구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점이 많기에, 박창범 교수는 “모든 관측 자료는 지저분하다. 간접적인 선택 효과 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라며 “관측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적인 왜곡 효과를 모두 보정하기 위해 관측 과정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해서 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없으면 관측의 왜곡 효과 보정을 하지 못하기에, 그는 KISTI로부터 슈퍼컴퓨터 사용 시간을 지원받아 관측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모형을 만들게 되었다. 대전에 있는 KISTI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수행한 우주 거대 구조 생성 시뮬레이션 연구가 바로 ‘호라이즌 런(Horizon Run, 이하 HR이라고 표현)’이다. HR은 2007년 HR1을 시작으로, HR2, HR3, HR4, HR5, 그리고 2021년 HR+에 이르기까지 단계마다 당대에서는 가장 큰 우주 거대 구조의 진화를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었다. HR1~4는 다체(N-body) 시뮬레이션으로 우주에 N개의 물체가 있다는 가정하에 우주 진화 모형을 연구했으며, HR1에서 HR4로 숫자가 커질수록, 시뮬레이션으로 돌린 입자 수가 늘어났다. 우주를 모사해서 정확하게 그 진화를 알려면 입자 수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입자의 중력만으로 우주에서 은하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기에 더 작은 규모의 별 생성 과정은 살펴볼 수 없었다. 이 점을 보완하고자 후속 연구인 HR5와 HR+에서는 유체역학을 추가했다. 박창범 교수 연구진은 중력과 유체역학을 같이 보는 거대 규모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을 이번에 처음으로 수행하였고, 이 역시 세계적으로 최대의 시물레이션이었다. 그는 “HR4까지는 물질 분포의 요동을 입자로 표현해 중력 계산을 했으며, 가스는 없다.”라면서 “HR5에서는 입자, 즉 중력의 특징에 가스와 별 생성이 들어갔다. 관측 자료와 직접 비교가 가능했다.”라고 본 연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HR5의 실험 결과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그림 - 좌측부터 동일한 지역에서의 a) 암흑물질, b) 별, c) 기체, d) 기체 온도, e) 중금속 함량. 별이 많이 모여있는 위아래 두 지역을 중심으로 기체와 암흑물질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별이 밀집된 지역을 은하가 많이 모여있는 “은하단 (Galaxy Cluster)”영역이라 하며, 거미줄 부분이 “필라멘트 (Filament)”, 그리고 구조가 거의 모이지 않는 사이사이 영역은 “공동 (Void)”라고 부른다. HR 연구는 매번 세계 최대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이 되었다. 이는 KISTI가 우수한 슈퍼컴퓨터 자원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2018년에 구축한 누리온은 25.7페타플롭스(PFlops)의 계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플롭스는 초당 수행할 수 있는 연산 횟수(부동소수점 연산)이고, 페타플롭스는 초당 1000조 번 연산을 할 수 있다. 박창범 교수는 “이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 위해 KISTI 슈퍼컴퓨터 전체 능력의 4분의 1을 단독으로 사용했다. 이 정도 규모의 슈퍼컴퓨터 자원을 지원받지 못했다면 불가능했다.”라며 KISTI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국내 연구자가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려면 KISTI가 더욱 강력한 슈퍼컴퓨터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를 그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이런 거대 규모의 시뮬레이션을 할 때는 연구자가 항상 현장에 붙어 있어야 한다. HR5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누리온 슈퍼컴퓨터의 코어 17만 개를 사용하였으며, 이는 일반적인 개인용 컴퓨터(평균 10코어 내외)의 만 배가 넘는 규모를 병렬계산 방법을 이용해 진행한다. 슈퍼컴퓨터를 돌리다 보면 간혹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며, 일부 코어가 오류가 생기면 다른 코어 들도 계산 수행을 못 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하기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시스템을 안전하게 재가동해야 한다. 그래서 박창범 교수가 시뮬레이션하는 동안에 함께 연구를 수행한 이재현 박사(한국천문연구원)와 김용휘 박사(KISTI 선임연구원)가 밤새 근무해야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뮬레이션이 끝나 데이터를 얻어냈을 때 그걸 KISTI가 관리하는 10Gbps 네트워크 속도를 가진 국가 과학기술 연구망(KREONET)을 이용하여 빠르게 옮겨와 분석 작업을 해야 했기에 고등과학원 내에는 있는 거대 수치계산 연구센터의 김주한 연구교수가 이 작업을 수행했다. 연구 수행 당사자뿐만 아니라 연구수행기관, 연구지원기관 내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얻어낼 수 없었던 성과이다. [그림 1.HR5 결과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그림 - 좌측부터 동일한 지역의 a) 암흑물질, b) 별, c) 기체, d) 기체온도, e) 중금속 함량. 별이 많이 모여있는 특정 두 지역을 중심으로 물질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은하(별의 집합)가 많이 모여있는 “은하단 (Galaxy Cluster)”영역이라 하며, 거미줄 부분이 “필라멘트 (Filament)”, 그리고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영역을 “공동 (Void)”이라고 부른다.] [그림 2. (좌) 회색은 은하 배경 영역을, 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각 은하를 나타낸다. n-1에서 n+1으로 시간에 따라 은하가 진화함을 뜻하며, 점선은 은하가 서로 합쳐지는 단계를 의미한다. 초기 형성된 은하(n-1)의 형태가 여러 역학적 진화 과정을 겪으면서 종국(n+1)에는 다수의 원반, 일부의 구체, 일부의 불규칙 은하가 됨을 본 모식도를 통해 개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 은하 여명기 초기와 후기에서의 은하 질량에 따른 은하 형태 비교. 아래 축 값은 은하질량, 좌측 축값은 은하 형태에 따른 상대적 비율 (원반 Disk, 불규칙 Irregular, 구체 spheroids 의 합은 1). 은하 여명기 극 초기 (z=7)에서 형성된 원반 은하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z=6, z=5로 갈수록 현재에 가까워짐) 그 비율이 더욱 높아지며 질량이 큰 은하일수록 오히려 불규칙 형태와 구체의 형태의 비율이 높은 국부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는 은하가 형성된 환경적인 요인, 즉 밀도장과 속도장의 차이로 인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HR 시뮬레이션의 무궁무진한 활용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인 호라이즌 런은 1페타바이트2) 규모의 우주 천체 데이터를 담고 있다. 박창범 교수는 초기 은하들이 모여 이루어진 원시 은하단의 특성에 대한 연구, 우주 모형에 대한 획기적인 이론인 제5원소론 등 수 차례 천체물리학 저널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모든 연구는 138억년 우주의 나이 동안 만들어진 천체들의 세세한 물리적 특징을 담은 방대한 양의 시뮬레이션 자료를 독자적으로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박창범 교수는 “이는 우주론의 핵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연구 결과이다. 하지만 한 연구자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으며, 한 가지 연구 결과만으로 확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며, 향후 이어질 연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박창범 교수가 표준 모형 검증 연구에 사용한 관측 자료는 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Sloan Digital Sky Survey, SDSS) 자료이다. SDSS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방대한 양의 관측을 수행한 프로젝트로 그간 엄청난 연구 성과를 이룩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급속한 기술 발전에 따라 현재 천문학자들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amesWebb Space Telescope, JWST)과 같은 초정밀 망원경은 물론 거대 마젤란 망원경(Giant Magellan Telescope, GMT)이나 대형 시놉틱 관측 망원경(Large Synoptic Survey Telecope, LSST)과 같은 대형 지상 망원경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관측 자료가 쏟아지는 시기에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관측 및 시뮬레이션 자료를 활용한 추가적인 연구가 잇따라야 하며, 박창범 교수 그룹은 실제로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가 주도하는 남반구와 북반구 2대의 거대 망원경을 이용한 DESI(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 3) 라는 후속 은하 적색이동 탐사에 참여하여, DESI로부터 얻어진 적색이동 관측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발맞춰, 비교, 검증을 위해 HR의 후속 시뮬레이션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구축된 KISTI 누리온 슈퍼컴퓨터 5호기는 물론, 이후 새롭게 도입될 슈퍼컴퓨터 6호기에 맞는 수치 모형을 설계하여, 다시 한번 세계 최대급 우주론 시뮬레이션을 수행함으로써 우리 우주의 근간에 한발짝 더 다가서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안타깝게도 박창범 교수가 수행한 HR은 물론, 우주론 시뮬레이션이라는 수치천체물리학 분야는 관측 천문학만큼의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결과가 아직은 부족하다. 세계 여러 수치계산 연구 그룹이 지금도 다양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고, 새로운 연구 결과는 항상 끝없는 검증을 거쳐야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그의 우주론 연구의 운명이 궁금하다. 우주론을 뒤흔드는 위대한 발견의 첫 실마리가 될 것인가?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읽을 거리] ‘호라이즌 런 5’ 최초 논문, 2021년 2월 8일자 ApJ 발표, ‘The Horizon Run 5 Cosmological Hydrodynamical Simulation: Probing Galaxy Formation from Kilo- to Gigaparcec Scales’ ‘제5원소론’ 논문, 2023년 8월 8일자 ApJ 발표, ‘Tomographic Alcock–Paczyński Test with Redshift-Space Correlation Function: Evidence for Dark Energy Equation of State Parameter w>−1’
누리온 슈퍼컴퓨터로 수행한 공동화 기포 맥동 중 비등온 상 변화
김종암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2023년 10월 해양공학 분야 학술지 《해양 공학》(Ocean Engineering)에 ‘공동화 기포 맥동 중 비등온 상 변화에 대한 수치적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냈다. 영어 논문 제목은 'Computational investigation on the non-isothermal phase change during cavitation bubble pulsations'이다. 김종암 교수는 논문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줬다. “유체가 빠른 속도로 운동할 때 압력이 증기압 이하로 낮아지면, 유체의 상(phase)이 액체에서 기체로 바뀐다. 이때 발생하는 기포를 ‘공동화 기포’(cavitation bubble)라고 한다. 물속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는 프로펠러 근처에서 기포, 즉 공기방울이 관찰된다. 공기방울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소적으로 압력이 낮아져 공동, 즉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때 공기방울은 팽창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특히 수축할 때 순간적으로 내부 온도가 섭씨 몇 백에서 몇 천 도에 이르고, 또 충격파(shock wave)를 발생시킨다. 그 결과, 주변 구조물에 소음과 진동, 부식 등을 가져온다. 이는 해결해야 할 대표적 공학적 문제 중 하나이다. 기포 유동이라는 물리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많은 실험 연구가 있었다. 기포 변형이라는 특성을 관측하기는 쉬우나, 상변화와 같이 열과 질량 전달을 동반하는 복잡한 물리 현상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건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공동화 기포에 대해 그간 많은 수치 해석적 연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상변화 물리 현상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경우 기포의 맥동(pulsation) 예측 정확도가 매우 낮았다.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열역학적 물성치를 제공하는 실매질 상태방정식(equation of state for real fluids)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감안되지 않는 열역학적 요소(실매질 상태방정식과 열역학적 상변화)를 도입했다. 또한 우리 연구 그룹이 개발해 놓은 고해상도 다상 유동 해석 프레임워크(ACTFlow_MP: All-speed Compressible Turbulent Flow for Multi-Phase)를 사용하여 공동화 기포 맥동 시의 상변화 특성을 분석했다. 증기 상에 대한 수송 방정식을 포함한 난류 유동 지배 방정식을 장시간 계산해야 하는 만큼, 대규모 수치 연구를 소화할 수 있는 계산 자원이 필요했다. 2020년도 KISTI 슈퍼컴퓨터 5호기 초고성능컴퓨팅 기반 R&D혁신지원 프로그램 3차에 선정되었으며, 누리온의 계산과 대용량 저장 능력의 도움을 받아 목표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었다. 공동화 기포 맥동 과정에서 개입하는 열역학적 효과의 상호작용을 최초로 규명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실험 데이터와 비교하여 높은 정확도로 기포 맥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 물속에서 기포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미국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인어 공주’ 속 장면은 생각난다. 애니메이션 속에 가재로 나오는 세바스찬이 있다. 세바스찬이 움직일 때 공기방울이 발생하는 걸로 묘사되어 있다. 김종암 교수의 연구는 그 공기방울과 관련한 거다. 굉장한 압력을 받는 물속에서 공기방울이 만들어진다는 건 얼핏 이해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의 이번 논문이 뭘 뜻하는지, 무엇을 알아낸 것인지 궁금해 지난 11월 28일 서울대학교 김종암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무엇을 연구하는 학자인가 김종암 교수가 뭘 연구하는지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항공우주공학과 홈페이지 자료를 통해 아주 거칠게 짐작할 수 있다. 전공(major)은 ‘전산유체역학과 수치 계산법’이고, ‘연구 관심’은 “주로 편미분 방정식을 풀기 위한 수치 기법 개발을 하고 이를 여러 공기역학 공학 분야에 적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83학번이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1990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기계항공공학과로 유학을 가서 1997년에 전산유체역학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음해인 1998년부터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김 교수에게 연구 키워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장 큰 연구 키워드는 전산유체역학(Computational Fluid Dynamics, CFD)이고, 두 번째 키워드는 계산과학공학(Comput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CS&T), 그 다음은 ‘Scientific Computing’이라고 했다. 영어 Scientific Computing은 한국말로 적당한 번역어가 없는데, 막무가내로 계산하지 않는다, 즉 계산해서 결과가 잘 나오면 나왔구나 하는 게 아니고, 기본 원리를 따져가면서 계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했다. 이런 게 그의 연구 방법론이다. 또 연구 영역은 넓게 보면 항공우주이고, 좁게 보면 유체역학 혹은 공기역학이다. 김 교수는 “날아다니는 물체 주위의 유동 현상을 살피는 거다. 유체 흐름을 해석한다. 그게 비행기일 수도 있고, 미사일일 수도, 발사체 혹은 배일 수도 있다”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을 계속했다. “내가 하는 분야가 ‘역학’이다 보니, 어떤 형태의 지배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나비어-스토크스(Navier-Stokes) 방정식 이라고 하는 풀기 쉽지않은 편미분방정식이다. 수학자들이 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수학자는 다른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이 편미분방정식의 수학적인 특성, 특히 방정식의 해가 존재하느냐를 궁금해 한다. 나는 공학자이니, 그런 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고, 해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이 방정식을 갖고 실제 어떤 공학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거다. 이게 재밌는데, 그게 뭐냐 하면 이렇다. 방정식을 계산하는 알고리듬을 개발하면, 방정식으로 묘사되는 현상은 거의 모두 풀 수 있게 된다. 이번 연구는 (나의 주 분야가 아닌) 해양과 조선공학 쪽에 훨씬 가까운 연구다. 공동화 기포 맥동 문제는 다양한 응용 분야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조선해양공학 분야에 이 주제에 관심있는 연구자가 많이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풀 수 있는, 또 관심 있는 어떤 편미분 방정식 혹은 수학적 모델링, 혹은 물리적 모델링을 조금 더 확장시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해보니까 예상보다 훨씬 더 용이하게 잘할 수 있었다.” 김 교수의 연구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예열 과정이 필요하다. 설명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연구 영역을 1, 2, 3 해서 세 가지 정도로 말해준다면 어떻게 되느냐라고 했다. 김종암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첫 번째는 고정밀 수치 기법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알고리듬을 갖고 비행체 주위 유체의 흐름을 해석하는 거다. 세 번째는 유체 흐름을 해석하게 되면 유체의 압력과 온도가 변하는데, 이런 게 비행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기초로 다양한 공기역학적-유체역학적 문제를 탐구한다. 때로는 유체와 구조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데 이를 유체-구조 연성이라고 한다. 이번 연구와 관련된 건 다상 유동(multi-phase flow)이다. 어떤 물질을 현상학적(phenomenological)으로 보면, 즉 분자 레벨까지 내려가지 않고 관측할 수 있는 걸로 말하면 크게 세 개가 있다. 고체, 액체, 기체다. 그래서 상이 세 개라고 한다. 예를 들면 공기만 계산하면 상이 기체 하나다. 공기만 계산하는 게 아니라, 액체와 기체가 섞여 있는 걸 계산하면 두 개의 상이 들어가 있고, 이런 걸 다상 유동이라고 한다. 다상 유동도 나의 연구 분야이고, 또 항공기와 우주비행체 설계를 위한 유동 연구를 한다. 항공기와 우주비행체 설계를 어떻게 잘 하면 연료가 적게 들고, 빨리 안전하게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날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그러려면 비행체 내외부의 유동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해양 공학 연구는 주요 분야인가 김 교수가 이번에 낸 연구는 해양공학 학술지인 《Ocean Engineering》(‘해양공학’이라는 뜻)에 출판했다. 그는 《Ocean Engineering》에 자주 논문을 내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논문 3편을 내기는 했다. 전산유체역학자인 만큼 그는 《Journal of Computational Physics》 《AIAA: American Institute of Aeronautics & Astronautics》 《Computer Physics Communication》 등에 논문을 주로 낸다. 그가 하는 연구의 80%는 항공우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에 해양 공학 연구를 하게 된 동기도 ‘액체 로켓 발사체’와 관련이 있다. 김 교수 설명을 옮겨 본다. “내가 연구를 하다 보니, 이게 조선해양 분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이 분야에 가장 좋은 저널이 무엇인가, 그랬더니 《Ocean Engineering》이라고 했다. 그래서 연구 결과를 투고했다. 이걸 하게 된 동기는, 본디 이걸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이게 다상 유동 분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발사체 중에 액체 로켓이 있다. 액체 로켓은 연료와 산화제로 액체를 쓴다. 산화제가 뭐냐면, 불을 붙이려면, 연료가 있고 또 산소가 있어야 한다. 액체 로켓은 액체 상태인 산소를 사용한다. 연료로는 케로신을 주로 쓰는데, 이것도 액체다. 액체 로켓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터보펌프다. 펌프는 빙빙 회전하는 것이고, 뭔가 흐름이 들어오면 이를 밀어주는 거다. 밀어내려면 압력이 높아야 한다. 펌프 앞에 터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회전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산업용 펌프는 보통 3000-4000rpm이나, 터보펌프는 만 단위다. 터보펌프는 액체 연료가 들어오면 고압으로 만들어 밀어낸다. 일반적으로 고압이면 연소가 잘 된다. 연소에 적절한 형태의 압력으로 높여서 연료를 내보내는 거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액체 연료는 극저온이다. 섭씨 영하 160~170도다. 운용 범위가 극저온 임계점(critical point) 근방이기에 온도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온도가 조금만 변해도 상변화가 발생한다. 상변화가 생기면 터보펌프 성능에 안 좋다. 안 좋기에, 상변화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이 연구를 시작했다. 시작해 보니, 이를 설명하는 케비테이션(공동) 모델이 기존에 몇 개 나와 있었는데, 이거보다는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했고, 우리가 이 문제(온도효과를 반영한 공동문제)를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연구 계기 그는 단일상(single phase) 연구를 많이 했다. 공학자로 일한 초기일수록 더욱 그랬다. 비행기 주위의 공기 흐름, 로켓 주위의 공기 흐름은 단일상 연구다. 단일상 연구도 복잡한 게 많다. 김 교수는 “내가 알고리듬을 하니까, 몇몇 사람이 진짜 복잡한 걸 해보고 싶으면 다상 연구를 해봐라”라고 말해왔다. 은퇴한 선배 공학자들의 조언이었다. 김 교수는 “내가 알고리듬을 했기 때문에 단일상에서 개발했던 알고리듬을 다상으로 확장하고 싶었다. 단상 알고리듬에서 다상 알고리듬 개발 연구로 확장했고, 터보펌프 문제를 풀려고 했는데, 그걸 하다 보니 케비테이션 문제가 눈에 띄었다”라고 말했다. 케비테이션을 예측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물리 모델링을 쓴다. 그런데 케비테이션 모델을 보니, 잘 모르는 이상한 계수(Coefficient)가 있다. 그중 한 모델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김 교수가 쿤츠 모델(Kunz Model)을 언급했다. 김 교수가 칠판에 모델 수식을 써줬다. Cdest 또는 Cprod라는 계수가 있고, 압력(P)과 밀도(ρ), 속도(v) 등으로 표현된 간단한 수식이었다. 김 교수는 왜 Cdest/prod을 이상한 계수라고 할까? “계산하는 사람, 특히 알고리듬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는 게, 이런 계수가 있는 거다. 이건 모르는 수다. 어떤 문제를 풀 때는 10으로 하고, 다른 문제 풀 때는 100으로 하고, 또 다른 문제를 풀 때는 또 50으로 한다. 왜 이렇게 하냐고 물으면, 그래야 답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하니 경험적으로 답이 잘 나온다고 한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쿤츠 모델은 뭘 말하는 것인가? 타깃의 국소적인 압력(P)이 포화증기압(saturation pressure, Psat)보다 크고 작음을 가지고 기화나 액화가 일어나는 양을 (경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가령 압력은 1기압이고, 온도는 섭씨 25도인 경우에는 계수를 100~110으로 놓으면 잘 풀린다. 이런 모델들이 상변화 영역에서 김 교수가 아는 것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김 교수는 “내가 관심 있는 문제는 계수를 어떻게 고쳐도 문제를 예측하지 못한다”라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좋은 알고리듬을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적고, 어쨌든 문제를 풀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공학자는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공학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해를 구하기만 하면 만족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공학자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자연과학자와는 접근법이 다르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그건 옛날 얘기다. 요즘은 공학자도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 융합학문의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공학과 물리학/수학의 경계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알고리듬을 하는 공학자는 이상한 계수가 식에 있으면 좋아하지 않는다. 나같은 사람은 그냥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불확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알고리듬을 개발한다는 건 불확실성을 낮추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온도효과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 기존의 상변화 모델에는 온도 효과가 들어가 있지 않다. 김 교수는 이게 문제라고 했다. 상변화는 많은 경우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온도 효과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쿤츠 모델에도 여기에 온도가 들어가 있네, 라고 말할 수 있다. 포화증기압이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에 따라 포화증기압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표시하는 다이어그램을 그려보면, 온도 효과는 없다. 이 모델에서 상변화가 생기는 메커니즘 자체는 압력 차이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쿤츠 모델도 그렇고 다른 모델들도 마찬가지다. 모델들에 온도 차이는 없다”라고 다시 강조했다. 로켓 발사체의 터보 펌프 문제로 일본에서는 과거 로켓 발사가 실패한 적이 있다. 가령, 1999년 일본의 H-II 로켓이 8번째로 발사되었는데, 비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단 엔진이 연소 정지되어 추락하였다. 조사 결과, 로켓 터보 펌프의 케비테이션 불안정성을 예측 못 해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이렇듯 온도 효과가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까지 개발된 모델을 보니, 그런 게 없었고, 그래서 이게 이슈가 되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지금까지 로켓은 어떻게 발사했나? 케비테이션 불안정성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로켓을 쏠 수가 있었을까? 김 교수가 질문을 받고 “예리하다”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갔다. x축과 y축으로 된 좌표계를 그린다. “조금 더 전문적인 얘기인데, 캐비테이션 넘버라고 있다. x축이 케비테이션 넘버다. y축은 펌프성능을 나타내는 지표다. ‘헤드’(Head)라고 하고, 얼마만큼 에너지 손실이 있었는지를 나타내는 지수이다. 케비테이션 넘버를 낮추다 보면 ‘헤드’가 뚝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터보펌프의 성능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곳이다. 공학자에게 중요한 건 떨어지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알아내는 거다. 성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걸 케비테이션 브레이크다운이라고 한다. 떨어지는 지점 이전까지만 터보펌프를 가동해야 한다. 떨어지는 지점 아래에 있는 캐비테이션 넘버까지 내려가면 안 된다. 그런데 물로 실험하면 곡선이 이렇게 나온다. 그리고 액체산소와 같은 실매질로 실험하면 성능곡선이 더 좋게 나온다. 케비테이션 넘버가 더 작은 경우까지도 터보펌프 성능이 잘 나온다. 그러니까 물 기준으로 하면, 실매질을 기준으로 하는 것보다 더 보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물을 기준으로 로켓을 설계하면 안전하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한 거다. 그런데 안전하기는 하나, 성능은 떨어진다. 좋은 발사체를 만든다고 하면, 안전하기도 하고,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터보펌프 성능이 더 끌어낼 수 있는데, 끌어내지 않는 건, ‘물 기준’으로 케비테이션 브레이크다운을 보수적으로 예측하는데 원인이 있다. 터보펌프 성능이 좋아야 추력 성능이 좋아진다. 발사체의 연료/산화제 공급 계통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터보펌프이기 때문이다.” 케비테이션 브레이크다운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실제 매질을 갖고 실험을 정확하게 하는 거다. 아니면 그런 게 고려가 된 정밀 계산을 하는 거다. 그런데 실매질을 갖고 실험하기가 쉽지 않다. 실매질은 섭씨 영하 150도인데, 극저온 매질을 갖고 실험을 하려면 실험 장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또 실험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영하 150도 되는 곳에 국부적인 측정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계산을 통해 정밀하게 파악하면 좋을 것이다. 김 교수가 이번에 해낸 일이 바로 이 작업이다. 온도 효과를 고려한 케비테이션 모델을 김 교수가 개발한 거다. PCM모델 개발에 성공 이번 연구에 필요한 모델 개발은 3년 전에 했다. 모델 이름은 PCM(Physics-based Cavitation Model)이다. 그리고 이번 연구가 나왔다. 그러니까 연구는 몇 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모델 개발을 하고, 모델을 검증하기 위한 데이터를 찾았다. 항공우주연구원은 관련 데이터를 민감하다는 이유로 공유하지 않았고, 일부 데이터만을 제공했다. 연구를 위한 본격적인 극저온 데이터는 미국 NASA에서 1960년대에 나온 게 있어 사용했다. 이들 극저온 데이터를 가지고 실매질 섭씨 영하 150도 이하에서 풀어보니 굉장히 잘 맞았다. 이렇게 검증을 마친 PCM을 공동화 기포 맥동 문제에 적용하여 맥동 과정에서 개입하는 열역학적 효과의 상호작용을 밝혀낼 수 있었다. 실험 데이터와 비교하여 높은 정확도로 기포 맥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학술지에 논문을 보냈고, 출판되었다. 김 교수는 “공동화 기포 맥동 과정에서의 열역학적 효과 개입을 규명한 것은 최초의 사례”라고 말했다. “선박이나, 잠수함에서는 프로펠러가 돌아간다. 돌아가면 국부적으로 압력이 낮아진다. 공동현상이 생긴다. 공동현상이 터보펌프에서는 엄청나게 생기고, 선박에서는 뽀글뽀글 방울져서 생긴다. 방울은 기체이고, 물은 액체다. 방울이 주위 환경에 따라 압축과 팽창을 한다. 수축할 때 부피가 줄어드니 압력이 순간적으로 올라가고 그러면 물방울이 붕괴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순간적인 온도가 수백 수천 도까지 올라간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고온 고압이 생긴다. 충격파가 생긴다. 그리고 다시 팽창하는 거다. 팽창하면서 발생한 충격파가 프로펠러나 잠수함 표면같은 곳에 충격을 가한다. 그러면 반복적인 충격으로 구조적으로 손상이 일어난다. 이런 일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걸 ‘cavitation erosion’(공동현상 부식)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이전에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공개된 논문들을 보니, 이걸 어떻게 통제해야할지를 정확히 모르겠다고 되어 있다. 어떻게 물리적인 모델링하면 좋을지를 모르고 있었다.” 일본에 ‘시마’라는 실험학자가 있다. 그가 2000년 즈음에 어려운 실험을 했다. 케비테이션 버블은 작으면 몇 밀리미터 크기이고, 수축하면 마이크로미터가 된다. 실험으로 계측하는 게 대단히 어렵다. 일본 연구자는 캐비테이션 버블이 생기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팽창과 수축, 팽창, 수축, 팽창, 수축이 반복하는 걸 실험을 통해 측정하고, 그걸 다이어그램으로 그렸다. 김 교수가 만든 PCM모델을 돌리니, 일본 공학자가 얻은 실험 데이터와 거의 일치했다. 김 교수 팀이 계산으로 예측한 게 실험 데이터와 부합했다. 논문을 학술지 《Ocean Engineering》에 보냈다. 김 교수 팀의 논문을 평가를 한 사람이 그랬다. “이 문제는 풀기가 굉장히 어렵다. 정말 잘 풀었다.” 케비테이션 버블이 두 번까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걸 설명하는 이론은 독일 사람이 낸 바 있다. 하지만 김 교수 팀이 한 것처럼 팽창과 수축, 팽창과 수축, 팽창과 수축을 세 번 반복하는 것까지 계산해내는 이론은 없었다. 김 교수 팀이 처음이다. 팽창과 수축이 세 번 반복해서 일어날 때까지 경과한 시간은 0.002초였다. 이번 논문의 제1저자는 최경준 박사과정 학생이다. 최경준 씨는 2024년 2월에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알아낸 건 무엇인가? 케비테이션 버블을 예측할 수 있다는 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공학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공동현상 부식이 일어나는 시간 간격과 케비테이션 크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게 가능하다. 김 교수는 “이번 출판된 논문에서 완벽하지는 않고, 60%쯤은 알아냈다”라며 “논문을 하나 더 쓸 텐데, 그 논문에서 케비테이션 버블 효과를 완전히 밝힐 것이다. 연구는 거의 다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요한 건 무엇이 문제 혹은 이슈인지를 알아내는 거다. 문제를 알기가 힘들고, 푸는 거는 상대적으로 덜 힘들다”라고 말했다. 좋은 질문을 품어야,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레일리-플레셋 방정식(Rayleigh-Plesset equation) 김 교수가 케비테이션 버블 연구의 역사를 잠시 설명해줬다. 김 교수에 따르면, 버블이 성장하는 히스토리를 물리적으로 모델링한 방정식이 있다. 버블 성장의 히스토리를 알아내려는 건 유명한 문제이고, 가장 먼저 한 사람 중 한 명이 레일리 경(1842~1919)이다. 레일리는 하늘빛이 왜 파랑인지를 설명하는 ‘레일리 산란’을 알아낸 그 사람이다. 플레셋은 미국의 응용물리학자다. 김 교수 설명을 옮겨본다.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방정식이 레일리-플레셋 방정식(Rayleigh–Plesset equation)이다. 줄여서 RP 방정식이라고 한다. RP방정식을 푸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식은 비선형 상미분방정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근사치를 구했다. 실험하는 사람들은 버블 성장의 히스토리를 실험적으로 측정했다. 여러 사람이 했고, 50~60년 동안 매달렸다. 그러다보니 하나의 선이 보였다. 시간에 따라 버블 지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보이는 거다. 선이 보인다는 건 RP방정식이 해를 갖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상변화로 인한 버블의 성장에는 3개 범위(range)가 있다. 관성 범위(inertial range), 중간 범위(intermediate range), 그리고 열적 범위(thermal range)다. 관성 범위가 무엇인가 하면, 케비테이션 입자가 있다고 하자. 입자가 성장하는 초기에는 주위 압력이 굉장히 낮고, 주위의 물은 열에너지가 충분한 상태이다. 주위에 있는 액체를 밀어내면서 성장하는데, 그 증가가 관성적으로 진행한다는 뜻이다. ‘관성 범위’다. 버블이 어느 정도 커지면, 그동안 계속된 증발(흡열 반응)로 인해 주위의 물의 열에너지가 감소하게 된다. 이때는 관성보다 열에너지에 의한 효과가 버블 성장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이제 상변화를 계속 일으키려면(버블이 계속 성장하려면), 얼마나 열을 공급받느냐가 중요해지고, 열을 공급받는다는 건, 열 전달이 일어나는 것이니 온도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의 케비테이션 모델은 이러한 ‘열 효과’를 포함하지 않고, ‘관성 범위’에서 머물렀다. 이 때문에 온도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 실제와 들어맞지 않는다. 열 효과는 ‘열적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열적 범위로 가면 ‘온도 변화’가 케비테이션의 성장을 결정짓는다. 이를 기반으로 몇 가지 물리적 아이디어를 추가해서 케비테이션 모델을 개발했다. 그리고 중간 단계 또한 중요하다. 중간 단계는 넓은 영역을 커버한다. 중간 단계에 버블이 놓여 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예측해야 하는데, 기존의 모델은 그걸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연구한 건 뭐냐 하면, PCM모델을 기반으로 아예 전체(관성범위-중간범위-열적범위)를 하나로 모델링을 하자는 거다. 그리고 핵심적인 연구를 마쳤다. 올해 연구가 거의 다 끝났다.” 계산량이 많았나?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계산량이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았다라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리눅스 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3500개 코어를 갖고 있다. 개인 랩으로는 적지않은 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큰 계산을 하려면 KISTI가 운영하는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라며 “한국의 슈퍼컴퓨터 시설은 미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열악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고 하지만, 슈퍼컴퓨터의 경우를 보면 일본은 우리와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슈퍼컴퓨터로 공학적, 과학적인 근본문제를 푸는 데 많이 할애한다. 반면에 한국은 상대적으로 계산보다는 뭔가 만들어 눈에 보이는 걸 선호한다. 김 교수는 “슈퍼컴퓨터가 아니면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은데, 한국은 그런 슈퍼컴퓨터가 있느냐 하면 KISTI 한 곳 밖에 없다. 하나 밖에 없는데 쓸 데는 많다. 한국이 슈퍼컴퓨팅 자원을 크게 늘려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종암 교수의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은사는 노오현 교수다. 노 교수가 1990년대 전산유체역학 연구를 시작했고, 그에게 배우면서 김 교수는 전산유체역학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노 교수가 2004년에 퇴직할 때 김 교수는 ‘정년퇴직 기념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애제자라는 단서로 보인다. 노오현 교수는 항공우주분야에서는 유일한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라고 했다. 김 교수의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과정 시절 지도교수는 앤토니 제미슨(Antony Jameson)이다. 제미슨 교수는 항공우주분야 CFD가 오늘날 공학적 응용에 이르기까지 가장 크게 공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전산유체역학 대가로 현재는 텍사스 A&M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림 1. PCM을 적용하여 계산한 공동화 기포 맥동의 결과를 축약하여 보여주는 그림 - (a) 초기 시점, (b) 첫 번째 최대 팽창 시점, (c) 첫 번재 최대 수축 시점, (d) 두 번째 최대 팽창 시점, (e) 두 번째 최대 수축 시점, (f) 세 번째 최대 팽창 시점. 각 그림의 좌측 절반은 공동화 기포의 부피 분율을, 우측 절반은 유동장의 압력 분포를 나타낸다. 초기 기포 근방에 위치한 하단 벽면 구조물로 인해 비대칭적인 기포 형태의 거동을 보이며, 팽창-수축을 반복하며 충격파를 발산한다. ] [그림 2. (좌) 시간에 따른 공동화 기포 반지름 계산 결과, (우) 시간에 따른 공동화 기포 내부의 압력 계산 결과. 실험 측정 결과(검은 점), 기포가 세 번째 주기까지 맥동하는 것이 나타나지만, 상변화를 고려하지 않거나(녹색 선, No Phase Change) 열역학적 효과가 고려되지 않은 상변화 모델 적용 시(청색 선, Baseline) 실험값과 매우 상이한 결과를 보인다. Baseline의 경우 계수를 조절해가면서 계산을 진행하도 두 번째 수축 시점에서 과도한 응축으로 인해 기포가 소멸하였으나, PCM 적용 시 세 번째 맥동 주기까지 실험값과 비교하여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
누리온 슈퍼컴퓨터로 수행한 이산화탄소 전기환원 촉매 탐색
백서인 서강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교수가 쓴 논문을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가 2023년 하반기에 받아들였다. 백 교수가 제출한 논문 제목은 '활성 모티프 기반 기계 학습을 사용한 CO₂ 저감용 전기촉매의 데이터 기반 발견'(Data-driven discovery of electrocatalysts for CO₂ reduction using active motifs-based machine learning)이다.백 교수의 이번 연구는 이산화탄소를 부가가치가 높은 화합물로 바꿀 좋은 촉매를 찾아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구가 배경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너무 높아 지구차원의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에,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활성과 선택성을 갖는 전기화학 촉매가 필요하다. 백서인 교수는 이론화학자다. 그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논문에서 촉매의 활성과 선택성을 동시에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인공지능 방법론을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터의 막강한 계산 능력을 이용한 계산과 인공지능 연구를, 기존의 촉매 개발론에 접목했다. 이론화학자가 기존에 했던 방식과는 다른 차원에서 활성과 선택성이 좋은 촉매를 찾아낼 수 있다는 걸 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어떻게 수행했는지 알기위해 지난 10월 10일 서강대학교 최양업관 4층의 백서인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인공지능을 갖고 하는 촉매 개발 연구의 큰 그림 백 교수는 “촉매 개발이 내 연구주제이고, 슈퍼컴퓨터를 통한 제1원리 계산, 즉 계산화학과 인공지능이 연구 도구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7년 카이스트 EEWS(Energy, Environment, Water, Sustainability)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두 곳(스탠퍼드대학교, 카네기멜런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했다. 2020년 3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촉매는 화학반응을 빨리 가게 하거나 늦게 가게 하는 물질이다. 반응 속도를 조절하나, 그 자신은 반응에 의해 소모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백 교수는 “촉매를 개발하기 위해선 다양한 후보물질에 대한 수많은 실험을 수행해야 한다. 20년 전부터는 제1원리계산(first principle calculation)으로 촉매 성능을 컴퓨터로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컴퓨터로 촉매 성능을 이론적으로 예측하고, 이후 실험 화학자가 검증하는 식으로 촉매 개발을 하고 있다. 제1 원리 계산을 하는데 컴퓨터 계산 능력을 많이 필요로 하고, 이런 식의 촉매 개발 과정을 ‘정방향 소재 설계’라고 한다. 그가 박사 과정과 첫 번째 박사후과정 때 한 연구가 이런 거였다. 백 교수의 요즘 연구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정방향 소재 설계를 빠르고 정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존의 제1원리계산 기반 방법론은 간단한 몇 가지 표면을 사용하여 촉매 성능을 예측하였으나, 백 교수는 수천 개가 넘는 표면을 이용해 촉매 성능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많은 표면에 대한 제1원리계산을 수행할 수 없기에,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있다. 그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제1원리계산을 위해서다. 제1원리 계산이란 무엇인가? 제1원리 계산이란 말이 낯설다. 백 교수는 “화학이나 소재, 물리 쪽에서 제1원리 계산을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백 교수에 따르면, 가정이 없이 바로 물리원칙에서 시작한다는 측면 때문에 제1원리라고 한다. “고체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때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다” “어떤 원소의 위치를 주면 그 시스템의 에너지를 알아낼 수 있는…” 과 같은 설명을 백 교수가 해줬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를 만나고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했다. 제1원리에 대한 이런 설명이 있다. “제1원리계산은 실험 혹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양자역학의 기본원리를 사용하여 진행한다. 전자와 원자핵과의 상호작용 및, 전자와 전자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슈뢰딩거 방정식을 푼다. 이를 통해 물질의 다양한 성질, 즉 구조, 열역학, 전자기, 광학 성질을 얻을 수 있고, 이런 계산법을 제1원리 계산법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개발되어 있으나 고체산화물의 구조 및 전자 상태는 밀도범함수이론(DFT: Density Functional Theory)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은 KISTI 사이트의 보고서 ‘제일원리계산을 이용한 신규 투명 전도 재료 연구’에서 인용했다. 밀도범함수이론이 무엇인지도 확인했다. 위키백과에 설명이 있다. 밀도범함수이론은 물질, 분자 내부에 전자가 들어있는 모양과 그 에너지를 양자역학으로 계산하기 위한 이론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어떤 분자가 존재할 수 있는지 여부와, 특정 분자의 모양과 성질 등등을 예측할 수 있다.) 제1원리와 밀도범함수이론 개념을 어슴푸레 알았다. 다시 백 교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제1원리에서 막혔기에 쉬운 부분부터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질문을 바꿨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논문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존의 촉매 설계 방법론은 단순 백 교수는 “기존의 촉매 설계 방법론은 주로 표면 하나만을 모델링했다. 그 표면 흡착물의 흡착 에너지 계산을 통해 촉매 활성을 예측했다”라고 말했다. 이 방법론은 실제(reality)와 괴리가 크다. 표면 하나만을 보는 모델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본 결과이어서 실험으로 확인해 본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백 교수 설명을 옮겨본다. “이번 연구는 시뮬레이션과 실험 간의 간극을 더 줄이기 위한 노력이고, 새 방법론을 개발한 거다. 하나의 표면이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표면들을 모델링했다. 모델링한 표면에서 흡착 에너지를 전부 계산하지 않았고, 그런 부분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했다. 기존 방법론보다 훨씬 많은 표면을 고려했기 때문에 실험과 계산의 갭을 훨씬 더 줄였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하나의 표면 모델이고, 다양한 표면을 모델링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설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 흡착에너지(adsorption energy)란 무엇일까? 이산화탄소를 다른 유용한 물질로 바꾸는 데 사용하는 촉매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인데, 그것과 흡착에너지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백 교수는 “이산화탄소를 다른 고부가가치 화합물로 바꾸는 일을 나는 하고 싶은 것이다. 그 일을 하는 게 촉매다. 활성과 선택성이 높은 촉매가 필요하다”라며 “이산화탄소를 다른 물질로 바꾸는 반응이 잘 일어나게 활성화해야 하고, 원하는 화합물만 선택적으로 생산하는 즉 선택성이 높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활성과 선택성을 예측하기 위해서 일산화탄소(CO)의 흡착 에너지, 수소(H)의 흡착 에너지 등등을 특성 예측 인자로 사용한다. 촉매 특성을 예측하기 위해 흡착에너지를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흡착은 표면에 물질이 결합하는 거다. 백 교수는 “CO의 흡착 에너지는 CO가 촉매 표면에 붙었다가 떨어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라고 이해하면 되겠다”라며 “촉매 반응은 표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흡착 에너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구리(Cu) 촉매를 생각해 보자며 “구리의 가장 안정한 표면은 111면이다. 그 표면에서 흡착 에너지 하나를 계산한다. 굉장히 단순한 표면을 계산하는 거라고 앞에서 내가 말했다”라고 말했다. 111면이 또 무엇인가? 그는 “실제 합성을 하면 구리 촉매의 다양한 면이 노출된다. 그중에서도 111면이 에너지적으로 가장 안정하기 때문에 제일 많이 존재 한다”라고 말했다. 백 교수에게 자료 화면을 볼 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이해하기가 낫지 않을까 싶다. 백 교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라며, 노트북을 켜서 슬라이드를 한 장 띄웠다. 그림이 있다. 금속 촉매가 있고, 촉매는 지지체(support) 위에 놓여 있다. 지지체로는 CNT(Carbon Nanotube, 탄소 나노 튜브) 등 다양한 게 사용될 수 있다고 했다. 백 교수는 “금속 촉매가 CNT 위에 올라가는데, 우리가 특별히 의도하지 않는다면 촉매 겉면의 111면이 가장 에너지적으로 안정된 면이다”라고 말했다. 그림에는 ‘111면‘ 말고 ’001면‘도 보인다. ’001면‘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001면은 이 경우에 두 번째로 안정한 면이라고 했다. 그러면 몇 개 표면이 금속 촉매 위에 있는 것인가? 백 교수는 “굉장히 다양한 조합으로 만들 수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실험 합성법을 썼을 때 많이 노출되는 표면이 111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많이 노출되는 표면이라는 건, (에너지적으로) 안정하기 때문에 많이 노출된다고 했다. 노출된다는 건 또 무엇인가? 백 교수 설명이다. “‘111면’ 말고 ‘001’면도 촉매 반응에 기여를 할 거다. 111면과 001면 사이에 있는 다른 모서리도 반응에 기여한다. 실험화학자가 실험을 할 때 나타나는 실제 현상은 저렇게 복잡하다. 그런데, 이론화학자가 만들어온 모델은 한 개의 면, 가령 111면만 봤다. 너무 간단한 모델이다. 물론 모든 표면을 집어넣은 걸 모델링할 수 없기 때문에 면의 일부를 모델링하기는 했다. 촉매 표면 크기가 5 나노미터면 그 안에 원자가 수 천 개가 있을 거다. 이렇게 많기에 제1원리계산인 DFT(밀도범함수법)계산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는 다른 면 대신 가장 안정한 면만 고려했고, 이게 기본적인 표면 모델링 연구다. 이제는 달라졌다. 슈퍼컴퓨터로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훨씬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개발한 방법론은 5000개 표면 모델을 만들어 예측한다. 그게 이번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연구에 적용한 것이고, 그 방법을 갖고 실제로 활성과 선택성이 좋은 촉매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였다. 이산화탄소를 고부가가치가 있는 물질로 바꿀 수 있는 촉매를 2가지 제안했다.” 백 교수는 학교에 컴퓨터 클러스터를 구축해서 갖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원활한 연구를 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KISTI의 큰 도움을 받아 연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백 교수가 개발한 5000개 표면을 보는 방법론 기존 방법론은 한 개 표면을 모델로 만들어 연구했고, 백 교수는 5000개 표면 모델을 만들어 보는 방법론을 개발했다고 했다. 계산을 하고, 인공지능 모델을 사용한다.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려면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촉매 시뮬레이션 분야에는 공개되어 있는 데이터가 많지 않다. 백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 기법들은 텍스트나 이미지를 활용하는 기법이 많다. 그런 정보는 인터넷에 많이 있다. 그런데 내가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촉매 표면 흡착 에너지 데이터는 공개되어 있는 게 없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나는 데이터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일산화탄소(CO)와 수소(H)의 흡착에너지를 밀도범함수이론(DFT) 으로 계산한 데이터를 만들었다. 내가 갖고 있는 컴퓨터 클러스터로는 데이터를 만들기가 힘들다. KISTI의 슈퍼컴퓨터 계산 자원이 필수적이다. DFT계산을 해서 데이터를 만드는데 KISTI 슈퍼컴퓨터의 계산 자원을 사용했다. 그리고 만든 데이터로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 시켰다. 이제 인공지능 모델을 갖고 촉매 특성을 평가할 수 있다. 5000개 촉매 표면이 반응에 기여하는 정도를 고려해서 활성과 선택성을 예측할 수 있었다.” 백 교수는 이산화탄소를 다른 물질로 바꾸려고 할 때 왜 일산화탄소와 수소의 흡착 에너지를 보는 것일까? 그는 “내가 박사후과정을 했던 기관에서 (한 연구자가) 이 연구를 2010년에 시작했다. 그 후로 연구가 발전해 가면서 CO와 H의 흡착에너지가 좋은 특성 예측 인자라는 게 밝혀져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 연구기관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이고, 연구자는 옌스 뇌르스코프(Jens K. Nørskov)다. 뇌르스코프 교수는 백 교수가 2017년에 스탠퍼드를 찾았을 때 멘토였다. 연구는 백 교수가 스탠퍼드에 가기 7년 전에 나왔다. 구리 촉매에서 이산화탄소 환원 반응이 일어나는 계산 연구, 즉 시뮬레이션 연구를 뇌르스코프는 처음으로 수행했다. 백 교수에 따르면, 반응에서는 여러 생산물이 나온다. 수소 기체, 포름산, 일산화탄소 등등의 반응 중간체가 만들어진다. 뇌르스코프는 이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살펴보았다. 백 교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의 작동 전압을 모사했다는 게 이 연구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정확도가 굉장히 높다는 걸 보였고, 다음 연구에서는 구리 말고 다른 금속 촉매로 연구를 확장했다. 백 교수는 “이산화탄소 환원 반응에서는 다양한 중간체들이 있다. CO, COOH 등이 있는데, 이런 중간체들의 흡착 에너지가 선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즉 비례를 이룬다는 걸 (뇌르스코프 교수 실험실이) 알아낸 거다”라고 말했다. 뇌르스코프 교수는 촉매 시뮬레이션 쪽으로는 대가이고, 몇 년 전에는 노벨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했다. 서강대 교수로 오다 서강대 교수로 2020년에 왔고, 다음해인 2021년에 낸 논문이 있다. 백 교수가 연구실 첫 학생인 목동현 씨와 진행한 연구다. 촉매 표면에서 흡착에너지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연구이고, 카네기멜런에서 한 연구를 확장했다. 카네기멜런에서는 더 정확한 인공지능 모델 개발에 주안을 뒀다면, 서강대에 와서는 정확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촉매 개발에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모델 개발 쪽으로 바꿨다.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다양한 입력 값이 있는데, 2021년 논문에서는 촉매의 흡착 자리 근처에 있는 원소만을 봤다. 백 교수가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CO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즉 결합하는 원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두 번째로 가까운 원소가 있다. 같은 층에 있는 것도 있고, 바로 아래 원자 층에 있는 원소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가까운 원소는 ‘흡착물에 대한 두 번째 이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원소들의 위치 등 다양한 정보의 값을 가중치를 둬서 입력했다. 그랬더니 카네기 멜런에서 개발했던 방법과 유사한 정확도를 가지면서 인공지능을 빨리 학습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 카네기 멜론에서 개발한 모델이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데 수 시간 걸렸다면 서강대 와서 개발한 모델은 200초면 충분했다. 백 교수는 “불필요한 정보 없이 필요한 것만 간결하게 넣었기 때문에 학습이 굉장히 빨리 됐다. 또 중요한 정보가 충분히 들어갔기 때문에 정확도는 예전의 내 모델 수준을 유지했다”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약간 과장하자면 기존에는 전수 조사를 했으나, 2021년 연구는 중요한 부분만 집중해서 더 빨리 찾아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KISTI 계산 자원을 써서 뭘 계산한다는 것일까? 슈퍼컴퓨터를 사용해서 계산해야 되는 문제라면 복잡할 거다. 백 교수가 수행하는 ‘촉매 재료 시뮬레이션’ 연구는 어떻기에 계산이 많은지 궁금하다. 슈퍼컴퓨터를 갖고 연구를 하는 화학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떤지 알고 싶다. 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p“예를 들어 계산 하나를 KISTI슈퍼컴퓨터의 한 개 노드로 하면 이틀 정도 걸린다.(참고로, KISTI 슈퍼컴퓨터 5호기는 총 노드 수가 계산노드 기준, 8305개다.) 입력하는 데이터가 커서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방정식이 복잡해서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으나, 나의 경우에는 후자에 가깝다. 시스템이 커질수록 계산 시간이 약 세제곱에 비례하는 크기로 늘어난다. 아까 하나의 표면을 보는 시뮬레이션 얘기를 했다. 실험에서 사용하는 촉매 크기를 모델링하고 모든 흡착자리를 고려한다면 시뮬레이션 결과가 실제와 비슷해질 거다. 하지만 크기가 커지면서 계산이 오래 걸리고 다양한 흡착자리를 고려해야 하다 보니, 클러스터가 아니라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백 교수가 KISTI의 슈퍼컴퓨터 이용자가 된 건 카이스트 대학원 박사과정 때 정유성 교수(현 서울대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공부할 때다. KISTI슈퍼컴퓨터를 써도 카이스트 옆에 있는 KISTI를 찾을 필요는 없고, 원격으로 접속해서 사용했다. 그가 KISTI 계산자원을 갖고 처음으로 연구한 건 KISTI의 과거 ‘거대 프로그램’을 받아갖고 수행한 거다. 금과 은 나노입자, 나노와이어 촉매에 관한 연구였다. 백 교수는 당시 “거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굉장히 큰 나노입자와 나노와이어까지 모사해보았다. 크기가 커지면서 활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했다”라고 말했다. 백 교수를 같이 찾아간 권오경 KISTI 슈퍼컴퓨팅본부 책임연구원은 도움말을 들려줬다. “KISTI에 두 가지 트랙이 있다. 일반 트랙, 혹은 창의 트랙이라고 하는 것과, 거대 트랙이다. 창의 트랙은 말 그대로 모든 연구자가 경쟁하는 입장에서 연구 계획을 제출하면 먼저 제출한 사람이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다. 거대 트랙은 진짜 큰 계산 작업에 대해 KISTI의 슈퍼컴퓨터를 3개월 정도 전세 내주듯 쓰게 한다. 일정 시간 동안 일정 공간을 전용으로 쓸 수 있게 해드린다. 정말 큰 혜택이라고 볼 수 있다. 거대 프로그램은 이용료가 없다. 무료로 국내 연구자들이 쓸 수 있다.” 백 교수는 현재 KISTI 계산 자원을 무료로 다 쓰고 있다. 급하게 필요한 경우 유료로 빌려 쓴 적이 있다. 그는 카이스트 박사과정 4년 내내 KISTI 슈퍼컴퓨터를 썼고, 또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 바로 KISTI 슈퍼컴퓨터 이용자가 되었다. 백 교수가 이번에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어 제안한 건 전기화학 반응을 이용해서 이산화탄소를 다른 물질로 환원시키는 것이었고, 465가지 금속 조합을 봤다. 그리고 Cu-Pd 합금촉매와 Cu-Ga합금 촉매가 C1이상의 화합물(에틸렌 등)과 포름산 생산에 유리한 촉매라고 제시했다. 백 교수의 이론 연구는 실험 화학자가 확인하였다. 실험실에서 직접 물질을 합성해서 반응을 일으켜 촉매의 활성과 선택성이 예측대로 나왔는지를 봤다. 실험 연구는 중국 상해 교통대학교의 쿤 지앙 (Kun Jiang) 교수가 했다. 지앙 교수와는 미국에서 인연이 있었고, 그와는 지금가지 공동 논문을 5편 썼고, 지금도 같이 하는 게 있다. 백 교수는 “우리가 1년간 이론 연구를 해서 465가지 조합 중 촉매 2개를 제안했고, 실험 그룹은 이를 확인하는 데 6개월 시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한양대학교 화공과를 최우등으로 그리고 조기 졸업했다. 카이스트 석사도 남들보다 6개월 빠른 1년 6개월만에 졸업했다. 공부와 연구를 잘 한 비결을 물었더니 “집념이 강하다. 그리고 엉덩이가 좀 무겁다”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박사과정은 조기졸업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고 했더니 “병역의무를 대신하려면 4년을 채워야 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림 1. (a) CO₂ 환원 반응 생성물의 선택성 예측 과정. (위) 다양한 촉매 표면에서 반응 중간 체의 흡착에너지를 예측. (아래) 예측한 흡착에너지로부터 각각의 생성물에 대한 생산성을 계 산. (b) 앞선 과정을 통해 465가지 원소 조합의 선택성 및 활성 예측. ] [그림 2. (a) 인공지능을 통한 Cu-Pd 합금 촉매의 성능 예측 결과. 전압에 따른 생성물의 선택성 변화를 예측. (b) Cu-Pd 합금 촉매의 성능 실험 검증 결과. 인공지능 예측 결과와 동일한 실험 결과를 확인. 또한 본 연구에서 개발한 방법론은 (c) 촉매 표면의 구조, (d) 조성 변화에 따른 성능 변화 예측 가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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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온

  • 개요계산 노드, CPU-only 노드, Omni-Path 인터커넥트 네트워크, Burst Buffer고속 스토리지, Lustre기반의 병렬파일시스템, RDHx (Rear Door Heat Exchanger) 기반의 수냉식 냉각장치로 구성된 시스템
  • 서비스'18년부터 서비스 개시
  • 계산용량8,305개의 인텔 제온파이 프로세서(코드명 "Knight Landing") 계산 노드와 132개의 CPU-only노드(인텔 제온 프로세서 Skylake)로 구성. 이론성능은 25.7PF

뉴론

  • 개요누리온 시스템이 Knight Landing 기반으로 결정됨으로 GPU 기반의 시스템 운영을 통한 사용자의 다양한 수요 대응
  • 서비스’19 부터 서비스 개시, 5호기와 파일시스템 공유, 차세대 신기술(FPGA, AMD EPYC, Optane 등) 지속적으로 채택/확장
  • 계산용량서버 노드 65개, GPU 260개, 이론 성능 3.53PF

슈퍼컴퓨터 사용현황

  • 점검 상태 :
  • 누리온(Nurion)
  • 뉴론(Neuron)
  • 활용 노드 수 node 활용 노드 수
  • 유휴 노드 수 node 유휴 노드 수
  • 점검 노드 수 node 점검 노드 수
  • 활용 노드 수 node 활용 노드 수
  • 유휴 노드 수 node 유휴 노드 수
  • 점검 노드 수 node 점검 노드 수